'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2)

2005. 8. 23. 오전 10:04:46

글자

(신부님의 이야기)

저한테도 그런 체험은 있었습니다. 저희집안은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때 세례를 받았고 제가 신학교를 들어갔을때 저 혼자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어떻게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아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체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강렬한 체험이 없이는 절대로 그럴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춘기때에 참 의문이 많았습니다. 특히 하느님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이치를 보면 왜?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왜 착한 사람들이 고생을 더 많이 하는가? 제가 사춘기때 어린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보통 그랬습니다. 왜? 나쁜 사람들은 더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주변에 돈 받기를 무척 좋아하는 어떤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집의 자녀들은 시집 장가도 잘갔습니다. 또 굉장히 착한 자매님이 있었는데 예수님도 열심히 믿었던 사람인데 나중에 속아서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보고 ‘아! 이거 하느님은 없다. 있다하더라도 ‘사랑’은 아니다 왜 사랑이라면 착한 사람이 더 고생하고 속고 평생을 눈물속에 살아야 하는가?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있을수도 없다. 이것은..‘ 더구나 미국같은 나라는 살빼는데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습니까? 그 살을 빼는데 드는 비용을 조금만 아프리카로 보내도 굶어 죽지 않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사람들은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줄려면 좀 공평하게 주시지 한쪽은 찢어지게 가난하게 한쪽은 배불러서 죽어가는 이 불공평 제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느냐고. 그래서 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당 다니거나 개신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제가 불렀습니다. “너 하느님 믿니?”하면 자신있게 하느님 믿는다고 저에게 말을 합니다. 저는 웃기지 말라고 하느님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답해보라고 방금했던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답변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있게 거보라고 하느님은 없다고 너는 속고 있는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답변은 못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없다. 그리고 솔직히 없다고 생각하니 좀 편했습니다. 파스칼에 탕스라는 책 서두에 보면 인간은 양심이 불안하면 하느님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는 그런 심리적인 것이 있답니다. 하느님이 없었으면 좋겠다. 불안하니까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윤회사상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하나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저희가 4남매인데 형님께서 서울에 살고 계셨는데 형님께서 하는 일마다 잘 않되는것이었습니다. 매번 실패를 하고 빚도 지고 그래서 왜이렇게 하는일마다 않되는지 원인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천주교도 믿지 않았었고 신을 부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묘를 잘못써서 그런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저 초등학교5학년때 돌아가셨습니다. 사실은 어린나이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생살이에서 부모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죽음에 대한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고등학교2학년때 다시 살아난것입니다. 사업이 않된 이유가 아버지의 묘를 잘못썼기 때문에 묘를 다시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묘를 다시 이장하는 계획을 하고 형님께서 그 날을 맞춰 내려 오시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둘째였기 때문에. 해본신분들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묘를 다시 하면 자식이 가서 관을 열고 그 뼈를 다 닦아드려야 합니다. 헝겊으로 다 닦아드려야 합니다. 형님이 계시기 때문에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일날 형님께서 서울에서 내려 오시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둘째인 제가 해야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밖에 않되었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주 특별한 체험입니다. 제가 할수 없이 산엘 갔습니다. 인부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관이 나왔습니다. 뚜껑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육이 아직 않썩었으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육은 없었습니다. 뼈와 머리카락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손톱도 몇센티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아버지의 해골을 들었습니다. 헝겊으로 다 닦아 내었습니다. 아버지! 하면서 제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1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10몇년동안에 있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순식간에 다 지나가 버립니다. 모든 것이 다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가슴속 깊이 박힌 말이 있었습니다. 

인생무상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인생무상을 너무도 깊이 체험을 하였습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라고 나옵니다. 모든 향락에 몸을 담궈보고 모든 부를 다 누리고 모든 은총을 다 누렸지만 결국 헛되고 헛되다. 시편에도 인생은 기껏해야 70면 근력이 좋아야 80년 그나마 슬픔과 고생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뼈속깊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이 분이 내 아버지시구나. 아버지! 이 분이 없이 어떻게 내가 존재합니까? 아버지의 모든 뼈를 다 추스려 닦고 묘 이장을 끝내고 돌아와서 생활을 하는데 이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사람은 왜 살까? 나는 지금 왜 사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왜 내가 대학을 가야하는가? 결국 죽습니다. 결국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너무도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왜 살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저는 잠을 못이뤘습니다. 오죽하면 ‘잠못이루는 밤을 위해서’란 책도 있어서 밤새 읽어보았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을 위해 왜 사느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어보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저의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한번 죽어볼까?하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래, 한번 죽어봐야겠다. 그런데 죽는것도 너무 두려웠습니다. 안됩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어느날, 나도 모르게 발길이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주일날 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성당으로 몸이 옮겨졌는데 시골성당이라 교리실도 없었습니다. 성당안에서 신부님께서 예비자 교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시작하려고 하는데 칠판에 ‘죽음이란?’이라고 써져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라서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으로 성당에 들어갔는데 성당 칠판에 검정 긴 치마를 입은 사람이 죽음이란?을 써놓고 막 말을 하려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저는 맨 끝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들었습니다. 도대체 저 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힘이 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부님을 나중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교도신부님으로 또 만났습니다. 사람은 영과 영혼과 육신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영은 한번 창조되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문을 통해서 지옥에 가든, 연옥에 가든 천국에 가든지 합니다. 이 영혼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작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죽음의 문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문에 들어간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때 이 문제로 몇 개월을 고생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미칠 것 같은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래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구나. 미칠 듯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일단은 영원히 산다고 하니깐 성당을 다니긴 다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다니긴 해야겠다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못 믿겠지만 영원히는 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다니다 말다 다니다 말다 하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착각을 하셔서 열심히 나온 줄로 알고 어른들 세례 받을 때에 학생은 저 혼자였는데 그냥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도 생기질 않았는데 말입니다. 교리는 딱 두가지만 배웠습니다. 성체는 진짜 하느님의 살이다. 세례 받은 다음에는 죄를 고백해야지만 용서를 받는다. 이렇게 두가지만 배우고 다른 것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세례를 받으라 해서 그냥 받은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배웠습니다. 첫영성체를 하고 난 다음때에 한 기도는 들어주신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8월 14일에 세례를 받았고 8월 15일날에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제가 첫영성체를 했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들어주신다고 했으니까 믿고 저는 믿도 했습니다. ‘예수님, 솔직히 저는 당신을 못 믿겠습니다. 부탁입니다. 한번만 저한테 나타나 주십시오. 한번만 짠! 하고 나타나 주신다면 저는 제 인생 바치겠습니다. 저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제발 한번만 나타나 주세요. 한번만!’ 제가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는 이제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주교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니까 실망스러운 모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성당안에서는 굉장히 그렇게 부드러웠는데 나가면서 얼굴이 돌변하는 것을 제가 많이 보았습니다. 

또 충격 받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상처에 가까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가장 좋았던 말씀이 너희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야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시다. 제가 주위의 거지들을 만나면 저는 잠시만 기다리시라 해놓고 집에 가서 귤 있는 것 없는 것 먹을 것을 다 가지고 와서 갖다 드렸습니다. 또 제가 거지들이 생활하는 곳도 찾아갔습니다. 돈도 갖다 주었습니다. 예수님 안녕히 계세요!하고 그렇게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진짜 예수님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순수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어느날 성당에 있었는데 불쌍한 거지가 왔는데 쫓아버리는겁니다. 거지를. 제가 그 장면을 본 순간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말입니다. 아, 누가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신은 죽은모양이다. 신앙은 이론이다. 그리고 복음은 현실하고 맞지 않는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접었습니다. 접어버리면 신앙에 힘이 없어집니다. 대충 대충 적당한 선에서 살아가는 유혹, 냉담의 위기가 바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냉담의 위기가 저에게 왔습니다. 한달 후에 본당에서 연락이 옵니다. 어떤 연락이 옵니까? 첫고해 성사를 보라고 연락이 오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냉담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고해성사를 보라는 겁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달 사이에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었습니다. 제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죄가 있었습니다. 한달사이에.. 제가 그동안 신앙이 없었으니까, 저는 세례 받고도 기도할 줄도 몰랐습니다. 성호경도 긋지 않고 밥도 먹었습니다. 성서를 읽은 것도 아니고 한달 사이에 죄를 지었습니다. 고해성사를 보러는 갔습니다. 그런데 안됩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아니 왜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면 화끈하게 개신교처럼 ‘하느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하면 다 되어야지. 신부님도 사람인데 사람한테 죄를 고백하게 하는가? 이건 불합리 하다 있을수 없다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신부님께서 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내가 저 신부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수 있는가? 아마도 내가 이 죄를 고백을 하면 저 신부님은 당장에 “나가!”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너 같은 놈은 필요없어!”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했다 왜 천주교에 입교를 해서 이 고생을 하는가? 개신교에도 하느님은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래 개종을 해야겠다 개신교로 옮겨야지 도저히 않되겠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뒤로 돌아다보고 성당 문을 나가려는 순간에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야, 너 어떻게 한달만에 개종을 하냐? 6개월이나 1년은 다녀 보고 개종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것이었습니다.

누가 말을 해준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좀 저 자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한달만에 개종을 하는가?’ 그래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그 자리를 나갔다면 이렇게 신자분들과 만나는 일이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그때는 제가 순수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용서 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습니까? 될 때로 되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성사를 보자. 다른 사람들은 다 보고 이제 저만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갔습니다. 고해소에 들어가서 다 끄집어 냈습니다. 누구 때렸습니다. 미워했습니다. 이런 것은 쉽게 고백할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죄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 죄를 끄집어 냈습니다. 신부님께서 뭐하고 하던 말던 나도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다 고백을 했습니다. 고백하고 나서 성당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주님! 당신이시군요!’고백했습니다. ‘아, 주님 당신이시군요! 이젠 됬어요 주님.’제가 주님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이 영으로 마음으로 깊이 체험을 했습니다. ‘주님, 아 당신이시군요!’ 이 체험은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고등학교 2학년때 체험입니다. 그 때 제가 만난 체험은 해방자였습니다. 정말 그 자유로움과 기쁨, 해방시켜주시는 예수님,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자식도 아닙니다. 남편이 아닙니다. 아내가 아닙니다. 죄’입니다. 죄. 진짜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해방시키러 오셨습니다. 또 한번의 미칠 것 같은 이 기쁨. ‘아, 주님 당신이시군요. 이제 됬어요 주님! 더 이상 나타나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됬습니다.’그 때 체험이 성서에 그대로 있습니다.

 루가복음 4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이것은 죄를 뜻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귀에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 묶입니다. 내 영이 묶이게 됩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는 주님의 성령이 가득히 내리는 하느님의 행위입니다. 묶인 이들의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해방을 제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②  눈먼 사람은 보게 하고,

(이제 나의 정신과 생각이 세속적인 가치관 공부 잘하는 것,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바뀝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이것이 인생에 성공의 성패이다. 내가 하느님을 잘 섬기는것만이 그래서 잘 죽는것만이 최고로 인생을 성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 인생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세례를 받은 이 체험 이후에 주일 미사를 한번도 빠져 본적이 없습니다. 평일 미사도 드렸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평일 미사도 2번 이상 드렸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주일 미사를 빠질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감히 어떻게 주일을 빠집니까? 그것이 나에게 큰 축복인데 말입니다. 평일 미사도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모릅니다. 시각이 틀려집니다. 눈을 뜹니다. 눈먼이들이 보게 됩니다. 인생관이 바뀝니다. 저는 ‘나에게 대학은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대학을 나와야 주위의 인식이 좋고, 또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회적인 권위도 서고 좋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너무도 거추장 스러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주님만 잘 섬기고 살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직장만 되면 나는 대학이 필요없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 무엇인가?’ 제 생각에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공무원이 되면 한평생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내가 돈 때문에 죄는 않짓는다. 내 자녀들과 함께 미사를 나오고’공무원들은 쉬는 날도 확실히 쉽니다. ‘빨리 퇴근하고 나의 가족과 함께 미사도 나오고 휴일이면 놀러도 가고 내평생 교리교사로’ 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평생 교리교사 하면서 성당일 하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했습니다. ‘아내와 가정화목, 성가정 이루는 것, 내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내 자식도 신앙적으로 키워내는 것 이것이 최고로 성공하는 것이다. 대기업도 중요하지 않다. 돈은 많이 벌겠지만 너무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사업도 안되겠다. 공무원이다.’생각하고 시험을 봐서 공무원 생활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눈먼 사람을 보게하고 새로운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적인 가치관에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이어짐.. (120분 강의여서 좀 깁니다. 그래도 빼놓지 말고 다 보아주세요.) *^^*~v

댓글 2

  • 2005년 8월 23일 오후 12:53

    안젤라 너무 고마워. 우리와 이기쁨을 나누기위해 이런 좋은 말씀을 올려주어서.

  • 2005년 8월 24일 오전 9:19

    안젤라언니의 정성에 놀라울 따름, 고마울 따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