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무스 (580년 - 662년)
피조물의 존재는 무엇보다
하느님 사랑의 부르심으로 생긴 것이다.
우리의 존재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할 때에
비로소 자기 창조의 목적을 실현하기에
바로 이때에 가장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기쁨은
세상의 다른 모든 기쁨들과는
달리 비교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 자신도
피조물의 즐거움으로 즐거워하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이런 하느님을
우리의 하느님으로 모신
우리들에게는 사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죽는 일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아름답지 않겠는가 ?
그렇다면
어떤 성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는 일이 아무리 힘겨워도
「하느님만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우리 역시 고백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중요한 일은
많은 신앙 인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신앙생활이 순전히
의무로 느껴지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앙은 결코 '기쁜 소식'으로 체험될 수 없거니와
고백 자 막시무스가 밝히는 하느님의 진면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 부유하거든. . . 가난하거든. . . .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광이 있을 지어다.
하느님은 모든 자들을 시험하신다.
어떤 사람은 부를 통해,
어떤 사람은 가난을 통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에게
아낌없이 베푸는지,
가난한 자는 그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는 지를. . . . .
♡ 선의는 인간의 의무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다.
만일 우리가
선의로써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