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와 세연정

2015. 4. 25. 오전 5:54:32

글자

세 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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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와 세연정

 

김형풍

 

 

2015,

현대문학사조의 봄문학기행,

 

봄 비 내리는 날

빗 속을 뚫고

보길도 "부용동정원"을 찾았다

비를 맞으며 세연정에 이르니

이조 시조문학의 금자탑으로 기억되는

고산 윤선도와 마주하게 된다.

 

안평대군의 스승인

시조 몬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

 

청 나라에 항복하고

인조 임금이 환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탐라(제주)로 들어가 세상을 안보겠다고

탐라로 항해하던 중에,

보이는 산이 너무 아름다워

탐라 행을 포기하고

보길도에 마무르게 되었다는

고산 윤선도,

 

고산이 직접 설계하고 조성했다는

고산의 놀이공원, 부용동정원,

흐르는 물을 막아 세연지를 만들고

세연지에 배를 띄우고 뱃 놀이를 했다는

고산 윤선도,

 

바로 물가에 정자를 지어

"세연정"이라 간판을 달고

400 여명이 넘는 수 많은 미녀들을 거느리고 

풍류를 즐기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연을 묘사하는 시를 지은

고산 윤선도,

 

고산은 이곳 세연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어부사시사>와 <산중신곡>,<산중속신곡>등,

주옥 같은 시를 쏟아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노래한

오우가(五友歌)는, 자연을 묘사한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당시 문단의 총아가 되기도한

고산 윤선도,

 

세연정 바로 앞에는

인공 못을 만들고

그 못 한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고,

회수담(回水潭)이라 이름 지어

부용동 8경이라 불리우고 있다.

 

고산 윤선도는,

문학과 정치를 오가며 저울질을 하였으나

무심한 정치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이조 시조 문학의 금자탑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조선시대 근세 문학에서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로 

고산 윤선도는 단가인 시조문학의 대가로써,

쌍벽을 이루는데,

송강의 사미인곡,속미인곡은

오로지 임금을 그리워 하는 것으로

유배나 은거 중에도 왕 혹은 정치판을 잊지 못했고,

 

반면에,

고산은 유배 생활에서 은둔을 통해

자연 자체에 몰입을 해 작품을 쓴 흔적이 역역하다. 

정치의 야망을 접고, 비운 마음으로 자연을 벗 삼고

풍류를 즐기는 고산은, 여덟 부인을 얻어 인생을 즐겼고,

심지어는 수 많은 여인들을 세연정에 불러

풍월과 여색을 즐기며 여생을 보내다가

그 때 당시 85세의 장수로 생을 마감을 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소왕국의 임금 처럼 행세를 한 고산을

주민이 완궁에 고발 까지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가난한 백성을 외면하고 풍류를 즐기며 자기만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 했었다는 점에서 좀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보길도에서 가장 좋은 땅은

거의가 다 세월호의 원흉,유병언의 땅이라고 한다

제주도를 비롯 여수 순천 남해안 일대에 유병언의 땅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자자한 터에 보길도의 좋은 땅 까지 사들였다는 유병언,

그는 정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자못 궁금하다.

보길도에서 세월호가 침몰된 맹골수도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한다

봄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 가운데, 

1박 2일의 문학기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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