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8월8일)

2014. 8. 6. 오전 6:37:11

글자

♡8월 8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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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Dominic)

축일  8월 8일

도미니코가 주교와 함께 여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명상적인 생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주교와의 여행 후에 그는
행동적이면서도 명상적인 사도직을 수행했다.
그는 스페인 중부의 엣 캐스틸 왕국에서 태어나
사제인 삼촌에게서 사제직을 위한 교육을
받았으며, 예술과 신학을 공부했고 오스마
대성당의 주임 신부가 되어 평범한 사도적
생활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직속 주교와 함께 북유럽을 여행하던 중
그는 랑그도크에서 적의에 찬 알비파 이단과
정면 충돌을 했다.

알비파-카타리파 '순수주의자들'-는
이 세상에 선과 악이라는 2가지 원칙이
있음을 주장했다. 모든 물질이 악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강생과 성사를 부정했다.
똑같은 원칙 위에서 그들은 출산을 금했고,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을 먹었다. 그들은
일반 신자가 따를 수 없을 만큼 정결했고,
금욕주의에 따라 영웅적이라 할 만한
영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도미니코는 이단과 싸워야 하는 교회의
어려운 처지를 느꼈으며,이단과 대항하여
선교하는 십자군으로 활약하도록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설교가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일반대중은 알비파의 금욕적인 영웅들을
찬미하고 추종했다.가장 훌륭한 여관에
머물면서, 시종과 수행원을 거느리고
여행하는 가톨릭 교회의 대변인에게서
감명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도미니코는 3명의
시토수도회 수사와 함께 복음서의
말씀(이상)에 따라 순회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1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했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동료설교자들은 점차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되었고, 1215년에 도미니코 수도원의
기원이 된 수도원을 툴루즈에 세웠다.
그의 이상과 수도원의 이상은 하느님,
학문연구, 모든 종류의 기도,하느님 말씀에
따라 인간에게 베푸는 구속 사업과 관련된
조직 생활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이상은 "명상의 결과에 따라
나아가는 것", 또는 "오직 하느님에 대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하는 것"이었다.
죽은 지 13년 후인 1234년에 성인품에 오른다.

설명 ; 도미니코회의 이상은 모든 종교
단체의 이상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단순히 칭찬할 뿐 아니라
본받도록 하는 것이다. 명상과 활동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명인 동시에
트럭 운전사인 존 스미스의
사명이기도 하다.
습성이 된 명상은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지속되는 평온함이며, 풍요로운 인간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 활동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이야기 ; 전설에 따르면, 도미니코는
하느님의 분노로 위협받는 죄많은 세상이
성모님의 중재로 구원받는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두 사람을
지적했는데 한 사람은 도미니코 자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
다음날 교회에서 도미니코는 꿈속의
그 낯선 남자가 누더기를 입은 거지 차림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거지에게로 가서
그를 껴안고 환영하면서
"당신은 나의 친구이며, 나와 동행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결합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우리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거지는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두 설립자의 회원들은 일 년에 두 번
기념식을 거행한다. 도미니코와 프란치스코의
축일에 도미니코회 수사와 프란치스코회 수사
들은 각각 자기들 교회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그 다음에는 "7세기 동안 결코 모자라본 적이
없었던 빵을 먹기 위해 같은 식탁에
앉는다."(버틀러,'성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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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구즈만과 복녀 요안나 아자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에스파냐의
칼라루에가에서 태어났고, 1184-1194년 사이에는
팔렌시아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마도
학업을 계속하는 중에 그곳에서 서품된 듯하다.
그는 1199년에 오스마에서 카논으로 임명되었다.
또 그는 1203년에 오스마의 주교 디에고데 아베제도를
수행하여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서
알비 이단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시토회의 개혁을
도왔다. 1206년에 그는 알비파(Albigenses) 지역인
푸루일레에서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강론하였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Innocentius III)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대장으로 몽포르의 시몬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하였다.
이때의 전투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도미니코는 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이단자들에게
설교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214년 시몬 4세가 그에게 카세네일의 성을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수도회는 그 다음 해에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Council of Laterano)에서 자신의 설교자회가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음 해에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로부터 승인을 받고
설교자회 즉 도미니코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도미니코는 수도회의 조직을 위하여 여생을
보내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 등지를
다니며 순회 설교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는 한편
많은 회원이 입회하였고, 또 수도원도 정착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켰던 만큼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면에서 크게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총회를 소집하였고, 그 이듬해 8월 6일에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가 헝가리 순회 선교에서 얻은 병으로 일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그는 1234년에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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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

성 레오니데(Leonides) 

축일  8월 8일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성 레오니데는 소아시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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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노(Marinus) 

축일  8월 8일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소아시아 남동부 지중해 연안 지방인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상당히 연로했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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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론(Myron)

축일  8월 8일 

평신도 농부이자 젊은 가장이었던
성 미론은 자선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한 번은 그가 곡물 탈곡장에 있을 때
한 무리의 도둑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생각하기를 만약에 그들이 또 곡식이
떨어져서 곤궁해지면 다시 강도가 되어
진정 가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그것들을
나르는 것 또한 도와주었다. 그러자
도둑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편 성 미론의
애덕에 감동하여 오래지 않아 모두 개종하였다.
라우치아(Raucia) 사람들에 의해 사제로
뽑힌 그는 이어 크레타 섬의 주교가 되었다.

성 미론은 자선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때 트리톤(Triton) 강이 범람했을 때
그는 강물을 굳게 만들어 그의 교구민들을
구출하였다. 그런 후 한 사람을 보내
강물을 다시 만지자 다시금 강물이 흘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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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리아코(Cyriacus)

성 라르구스(Largus)

성 스마락두스(Smaragdus)

12명의 동료들

축일 8월 8일 

이탈리아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는 어른이 되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제가 된 그는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 건립에 참여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돌보는데
힘썼다.
전설에 의하면 성 키리아쿠스는 마귀에 들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딸을 치유해주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세레나
(Serena, 8월 16일)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Persia)의 사푸르 왕의 딸도
마귀로부터 구해주었고 왕실 가족들의 개종을
이끌었다고 한다.

결국 성 키리아쿠스는 체포되어
성 라르구스(Largus, 8월 8일),
성 스마락두스(Smaragdus, 8월 8일)와 다른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받고 참수된 그는 그 근방에
묻혔다가 후에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녀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알자스(Alsace)에 있는
성 키리아쿠스 수도원으로 옮겨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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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마락도(Smaragdus)

축일  8월 8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을 건립하는데
참여했던 그리스도인 노예
성 스마락두스(또는 스마락도)는
고문을 당한 후 성 키리아쿠스(Cyriacus)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탈리아 로마(Rome)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참수된 그는 근처에 묻혔다가
로마의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옮겨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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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트만(Altman) 

축일  8월 8일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Passau)의 주교로 임명받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e)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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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밀리아노(Aemilian) 

축일  8월 8일 

터키 마르마라(Marmara) 해의 섬인
키지쿠스의 주교인
성 에밀리아누스(Aemilianus,또는 에밀리아노)는
성상파괴주의자들을 반대한 이유로
유배 중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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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펠턴(John Felton) 

축일  8월 8일 

1569년에서 1570년 사이에
교황 비오 5세(Pius V)가 “천상의 통치자”란
칙서를 통하여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반대하고 가톨릭의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그녀를 파문시켰다. 이 때문에 영국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을 잡아들이고 이 칙서 소유한
사람을 사형에 처했는데, 이때 스우스워크에
살던 노포가(家)의 신사인
요한 펠턴(Joannes Felton)도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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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호르미스다(Hormisdas)

축일  8월 8일 

페르시아의 귀족이며 지방 관리의 아들
성 호르미스다는 그의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 개종한 듯
보인다. 그는 페르시아 국왕 발람의 요구를
받았으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자신의 지위와 재산까지 모두 빼앗기고
군대의 낙타 몰이꾼으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국왕이 그에게 다시 배교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는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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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Joan)

축일 : 8월 8일

아란다 교외의 아자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펠릭스 드 구즈만과 결혼하여 4자녀를
두었는데, 그중의 한 아들이 저 유명한
성 도미니꼬이다. 그녀는 육체적인
아름다운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지극히
아름다웠다고 하며, 1828년에 그녀의
공식 공경이 허용되었다. 그녀는 앞의
두 아들을 낳을 때에는 자신이 개를
낳는 꿈을 꾸었으나, 도미니꼬를 낳을 때에는
횃불로 활활 타오르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개가 도미니꼬회의 상징이 되었고,
"주님의 사냥개"란 말로 도미니꼬회원들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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