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제자 에바 루빈스타인이 찍은 다이앤 아버스.
칼을 삼키는 알비노 여인, 키 240cm가 넘는 거인, 서로 다른 표정의 일란성 쌍둥이…. 1967년 미국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멘트’전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저런 불편한 것들을 찍는 거지?”
그러나 불과 5년 후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 ‘불편한’ 사진들은 미국 사진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초청받았고 같은 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사후 회고전에는 25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다이앤 아버스.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의 딸이자 미모의 여인이며 데뷔 10년 만에 세계적인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남긴 인물.
화려한 경력 뒤에 숨겨졌던 그녀의 일상은 다소 충격적이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18세에 감행한 결혼 그리고 이혼, 수면제 과다 복용, 사회의 어두운 부분만 찾아다니며 남긴 사진들, 우울증, 48세에 손목에 칼을 그어 자살….
한때 아버스의 모델로도 활동했던 저자가 200명이 넘는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건져 올린 아버스의 일상은 한 신화적인 사진작가의 불행한 일생을 담고 있다.
자신의 부유한 집안 배경이 ‘사회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낀 아버스는 일탈을 시도했고 그것은 18세에 가난한 사진사인 남편 앨런 아버스를 만나며 해소되었다. 그러나 1957년 앨런과 결별한 아버스는 직접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거리로 나섰다. 평생 스승이자 지기가 되어준 리젯 모델로부터 ‘자신만의 사진을 식별하라’는 조언을 받은 아버스는 어린 시절부터 끌리던 금지된 것, 대면하기 두려운 사람들과 장소를 담기 시작한다.
나체주의자, 장애인, 정신지체장애아 등을 찍은 그녀는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 사이에 협력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매력에 점점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소재를 화면 한가운데 대중 스타처럼 담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 ‘odds(이상한 것)’를 따서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dds)’라고 불린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작품 세계가 ‘이상’하기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 지었다.
피사체와 사진가가 나눈 교감을 사진 안에 반영하는 독창적인 그녀의 사진들이 ‘눈이 아니라 마음에 호소한다’는 평과 함께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의 장으로서 전 세계에 퍼진 것은 그녀가 죽은 지 불과 5년 후였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도 4월 말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저작권 탓인지 아버스의 사진을 전혀 책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흠. 원제 ‘Diane Arbus’(1984년).
1억5천인가 2억 5천에 팔린 사진.
“다이앤 아버스는 비정상인들, 아니 이 세계의 이방인들을 많이 찍어왔다. 왜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의 어떤 딜레마가 있지 않나. 특별하다고 말하는 건 위악인데, 그렇다고 평범하게 본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위선이 되는, 그들을 똑같이 대한다고 말할 때의 혼란. 그런데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은 그것에 대해 너무 당당하여 오히려 그 혼란을 무화하는 지점이 있다. 가령 새로운 사물을 찾기보다 사물을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는 매그넘 사진작가들의 방식이 있는가 하면, 다이앤 아버스의 경우는 실제로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찍는다. 다이앤 아버스 사진 중에는 기형인들이 많다. 그전에는 이런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 사진을 보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다. <일란성 쌍둥이, 로젤>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도 그중 하나다.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이방인들과 함께 세상에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세계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들을 봐야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언급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보다 언급하며 친구가 되려는 것이 촌스러운 것처럼 치부되곤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멀어지는 것보다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에는 그걸 인정하는 태도가 있다. 피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직시하기, 아프지만 거기에 계속 서서 뻔뻔하기, 다른 데 보며 고상하게 모른 척 있으려 하지 않고 ‘바로 여기 있다’고 응시하기. 딜레마를 대하는 그 태도가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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