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큰아들의 마음 1 - 송봉모 신부님

2008. 1. 20. 오전 12:07:59

글자
    ♤-돌아온 탕자 - 큰아들의 마음 1 -♤ 큰아들의 마음 1 첫째, 큰아들은 아버지의 처사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아버지를 존경해 왔고, 옳은 분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동생이 집에 돌아온 이 시간,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환영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큰아들은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관대한 처사를 견딜 수 없다. 자기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동안 멋대로 살아온 동생은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날 수 밖에, 마치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소작인들이 하루가 다 끝나갈 때 와서 일한 소작인들과 똑같은 일당을 받았을 때 화가 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잊지 말라! 하느님의 행동양식은 모자이크와 같다. 모자이크는 밖에서 볼 때에 볼품없지만 안에서 볼 때에는 찬란한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의미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도 하느님 마음으로 바라보기 전에는 종종 이해할 수가 없는 법이다. 둘째, 큰아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동생에 대해서 화가 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큰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늘 순종적이고 모범생인 자기와는 달리 자기 주장이 강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 동생을 질투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 동생의 인생관을 단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동생처럼 뛰쳐나갈 용기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질투심과, 재산의 삼분의 일을 다 탕진한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다니 하는 분노가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도덕적인 자아가 있는 곳에 원망에 가득한 불평분자적 자아도 함께 공존한다." 고 말한 나웬은 큰아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순종적이고 책임감 있고 합법적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존경과 칭찬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으며 모범적인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큰아들은 흠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작은아들의 귀향을 기뻐하는 아버지와 맞닥뜨렸을 때 어둠의 세력이 큰아들 마음속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부글부글 끓게 만든 것이다. 셋째, 현실적인 이해이다. 큰아들이 화가 난 것은 자기 몫을 남아 있는 재산을 동생이 축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분배될 재산은 여전히 아버지의 통제하에 있는데 동생은 지금 잔치를 벌이면서 축내고 있고 앞으로도 축낼 것이다. 아버지가 동생을 받아들여서 자기 몫의 재산으로 먹여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훗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땡전 한푼 없는 둘째 아들이 불쌍해서 자기 몫의 재산을 또다시 분배해서 동생에게 줄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큰아들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다 지친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따스한 물과 음식과 쉼이다. 그런데 큰아들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도 채우지 못한 채 밖에 서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밖에 서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큰아들은 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따뜻한 환영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밖에 서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더욱 비참한 느낌을 갖게 된다. 기쁨에 겨워하는 이들의 모습과 손님을 접대하며 왔다갔다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릿어릿 보면서, 웃음소리와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더욱더 비통해진다. 자기를 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큰아들은 쓰라린 마음, 강렬한 질투심, 분노에 사로잡혀서 상처받으며 밖에 서 있는 것이다. 큰 아들과 같은 상태에 있는 이들이 많다. "저런 놈이 성당에 다니는 한, 성당이 저런 놈을 환영하는 한 난 성당에 다닐 수 없어." 하면서 화가 나서 공동체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거절할 때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스스로가 그사랑을 거부하였으니, 큰아들이 집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자 아버지가 밖으로 나온다. 스스로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다. 하느님조차도 우리 자유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신다. 집을 떠나겠다는 작은아들을 어쩌지 못해서 보내시는 아버지 모습이나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큰아들을 어쩌지 못해서 밖으로 나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다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이렇게 두 아들의 자유를 다 존중하다보니 아버지는 계속 바쁘다. 그 동안은 작은아들 때문에 밖에 나와 서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큰아들 때문에 다시 밖으로 나간다. -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중에서 -

댓글 2

  • 2008년 1월 20일 오후 9:43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 질투하시는 하느님이 아니고요 ^^^

  • 2008년 1월 21일 오전 8:14

    ~ㅋ 왜 그런 말씀을? 전엔 큰 아들이 사랑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동생이든 아버지든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제대로 사랑했었다면 누구 맘을 헤아리던지, 함께 기뻐했을텐데.. 라고.. 그러면서 저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었는데(???),..물론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온 작은 아들을 반기지 않으셨더라면 그런 모습 보는 것이 더 속상하기도 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