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21)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05. 6. 21. 오전 7: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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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창세기 13,2.5-18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을 많이 가진 큰 부자가 되었다. 아브람을 따라다니는 롯도 양 떼와 소 떼를 비롯하여 천막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그 지방은 그들이 함께 살 만한 곳이 못 되었다. 그들이 지닌 재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잦았다. 그때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즈 사람들이 그 땅에 살고 있던 때였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롯이 멀리 요르단 분지를 다 둘러보니, 소알에 이르기까지 마치 주님의 동산같이, 이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다. 그것은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의 모습이었다.
롯은 요르단 분지를 다 차지하기로 하고 그리로 옮겨 갔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서로 헤어졌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살았고, 롯은 요르단 분지에 있는 여러 도시에서 살다가 마침내 소돔으로 천막을 옮겼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주님께 못할 짓만 하는 아주 못된 사람들이었다.
롯이 떠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고개를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라. 네 눈에 비치는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나는 네 자손을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게 하리라. 땅의 티끌을 셀 수 없듯이 네 자손도 셀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서 이 땅을 두루 돌아보아라.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제단을 쌓아 주님께 바쳤다.


복음 마태오 7,6.12-14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한 젊은이가 우연히 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심히 보다가 너무나 궁금했는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앞을 못 보게 되셨는지요?”

그 장님은 무덤덤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젊어서 눈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지금 눈을 너무나 많이 쓰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자기도 언젠가는 이 장님처럼 앞을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젊은이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눈을 아낄 수 있을까 하고…….

다음날, 이 젊은이는 한쪽 눈을 가린 채 다른 한쪽 눈으로만 보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이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 한쪽 눈을 가리고 다니는가?”

“한쪽 눈은 아껴두었다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눈이 망가졌을 때 쓰려고요.”

세월이 흘러 드디어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는 드디어 아껴둔 나머지 한쪽 눈을 쓸 차례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의 안대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눈은 너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서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쓰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달리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이 청년의 모습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에게는 많은 재능들이 있습니다. 그 재능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재능을 아끼려는지 꼭꼭 자신의 깊숙한 곳에 숨겨둡니다. 그리고는 말하지요.

“나는 능력이 안돼요.”

스스로 능력이 안 된다고 숨어버리는 것. 그 모습이 바로 장님이 될까봐 한쪽 눈을 가리는 청년과 무엇이 다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즉, 자기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대로 먼저 상대방에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을 먼저 해주고, 칭찬받고 싶으면 먼저 칭찬을 해주고, 존경받고 싶으면 존경을 먼저 해주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남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인색했던 것은 아닌가요? 그러면서 갖은 핑계를 대면서 자신은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재능은 지금 사용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는 집이 되어야 한다(어니 J.젤린스키)

당신의 주변에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태어났음을 입증하는 기회들이 많이 있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하고 싶다면
이런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기회는 예상치 못한 때에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기회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만나면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많은 이들이 너무 오래 심사 숙고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한다.

완벽한 조건이란 없다.

기회는 한 번 이상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한 번 가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당신이 어떤 기회를 앞에 두고 너무 오래 망설인다면
그 기회는 어느 덧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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