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23) -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2005. 6. 23. 오전 7: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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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16,1-12.15-16
그 무렵 <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마침 사래에게는 하갈이라는 이집트인 몸종이 있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시니, 내 몸종을 받아 주십시오. 그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 대를 이었으면 합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이집트인 몸종 하갈을 남편 아브람에게 소실로 들여보냈다. 이것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아브람이 하갈과 한자리에 들었더니, 하갈의 몸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하갈은 그것을 알고 안주인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래가 아브람에게 호소하였다.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는 것은 당신 탓입니다. 나는 내 몸종을 당신 품에 안겨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저를 업신여깁니다.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몸종인데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사래가 하갈을 박대하자 하갈은 주인 곁을 피하여 도망치는데, 주님의 천사가 빈 들에 있는 샘터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터는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었다. 그 천사가 “사래의 종 하갈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물었다.
“나의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하갈이 이렇게 대답하자, 주님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주님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었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 울부짖음을 주님께서 들어주셨다. 네 아들은 들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
하갈은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갈이 낳아 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준 것은 아브람의 나이 팔십육 세 되던 해의 일이었다.


복음 마태오 7,21-29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에 선교사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청년은 너무 기뻐서 당장 옷과 구두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나갔어요.

그런데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해 부득이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의족을 하게 되었지요. 그는 크게 절망하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원망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선교사로 나가 당신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째서 저의 다리를 자르십니까?”

얼마 동안을 그렇게 낙심하고 원망했던 그는,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활동할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설마 나 같은 사람도 받아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신청을 했는데, 다행히 합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식인종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에게 잡혀서 먹히기 직전의 큰 위기를 처하게 됩니다.

결국 선교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의족인 자기 한쪽 다리를 뚝 떼어서 식인종들에게 던져 버립니다. 그런데 자기 다리를 뚝 떼어내는 그 모습을 본 식인종들은 깜짝 놀랐지요. 이제까지 자기 다리를 스스로 잘라 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아주 조심히 떼어버린 다리를 먹어보니 아무런 맛도 없는 것입니다.

식인종들은 “이 사람은 신이다!”라고 외치면서 모두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하네요. 선교사는 그때서야 자기의 다리 하나가 잘린 이유를 깨달을 수가 있었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상 길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 놓여 지면 쉽게 포기를 합니다. 이제 더 이상의 길은 없다고 하면서요……. 하지만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좋은 길로 안내해주십니다. 단, 당신의 뜻을 실천하는 경우에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주 하느님. 그 하느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체험할 것이며, 우리 모두의 꿈인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법칙을 중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행복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법칙을 중시하고 따른다고 해도, 그 안에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이 없다면 결국은 또 한명의 위선자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너무 많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내가 실천할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 사랑을 실천해 보세요.



나중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오늘날 우리는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습니다.
돈은 더 쓰지만 즐거움은 줄었고, 집은 커졌지만, 식구는 줄어들었습니다.
일은 더 대충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습니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줄어들었습니다.
말은 많이 하지만 사랑은 적게 하고 미움은 너무 많이 합니다.
우리는 달에도 갔다 왔지만 이웃집에 가서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외계를 정복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습니다.
수입은 늘었지만 사기는 떨어졌고, 자유는 늘었지만 활기는 줄어들었고, 음식은 많지만 영양가는 적습니다.
호사스런 결혼식이 많지만 더 비싼 대가를 치루는 이혼도 늘었습니다.
집은 훌륭해졌지만 더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제안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날을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찾고, 지식을 구하십시오.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사람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찾으세요.
이 모든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집착도 요구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자존심도, 돈이나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족들, 친구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십시오.
당신이 좋아하는 곳을 방문하고 새롭고 신나는 곳을 찾아 가십시오.
인생이란 즐거움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인생은 결코 생존의 게임이지만은 않습니다.

내일 할 것이라고 아껴 두었던 무언가를 오늘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사전에서 ‘언제가', ‘앞으로 곧', ‘돈이 좀 생기면' 같은 표현을 없애 버리십시오.

시간을 내서 ‘해야할 일' 목록을 만드세요.

그리고 굳이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먼저 하도록 하세요.
그 친구는 요새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 하지 마세요.
즉시 관계를 재개하여 과연 그 친구가 어떤지 바로 알아보도록 하세요.
우리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주, 우리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그리고 사랑하는지 말하세요.
당신의 삶에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웃음과 기쁨을 보태줄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마세요.

매일, 매 시간, 매 순간이 특별합니다.

당신이 너무 바빠서 이 메시지를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보낼 만한 단 몇 분을 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나중'에 보내지 하고 생각한다면,
그 ‘나중' 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 주세요.

그리고 저기 있는 그 누군가는 지금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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