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6.25) -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2005. 6. 25. 오전 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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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기 18,1-15
그 무렵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웬 사람 셋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보자마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청을 드렸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쳐 가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좀 쉬십시오. 떡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게 하여 주시겠소?”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 서 말을 내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이르고 소 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살이 연하고 맛있어 보이는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종에게 맡겨 빨리 잡아서 요리하게 하고는 그 송아지 요리에다가 엉긴 젖과 우유를 곁들여서 손님들 앞에 차려 놓고, 손님들이 나무 밑에서 먹는 동안 그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부인 사라는 어디 계시오?” 하고 묻자, 아브라함은 사라가 천막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천막 문 어귀에서 이 말을 엿듣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늙은이였고 사라는 달거리가 끊긴 지도 오래였다.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이렇게 늙었고 내 남편도 다 늙었는데, 이제 무슨 낙을 다시 보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사라가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랴 하며 웃으니, 될 말이냐? 내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가 다시 찾아오리라. 그때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자 사라는 겁이 나서 웃지 않았다고 잡아뗐으나, 주님께서는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 하시며 꾸짖으셨다.


복음 마태오 8,5-17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고 사정하였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저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감탄하시며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어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잘 들어라.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백인대장에게 “가 보아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간에 그 하인의 병이 나았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베드로의 장모가 마침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부인의 손을 잡으시자 그는 곧 열이 내려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께 시중들었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 마귀 들린 사람을 많이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악령을 쫓아내시고 다른 병자들도 모두 고쳐 주셨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제까지 출판된 저의 책은 모두 2권입니다. 그리고 이제 조만간 세 번째의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책을 출판하기에 앞서 그 내용들을 읽어보고 교정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다양한 사건이 많았구나.’

이번 책은 작년부터 올해까지의 새벽 묵상 글을 정리해서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작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제게 일어났으며, 또한 그 안에서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써 큰 사랑을 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왜 그 분의 존재를 자주 잊어버리는가?’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도 편협된 생각으로 주님을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다가와도 주님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짙은 안개로 위험한 상태에 놓여진 비행기 안의 승객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객들 중에서 한 명의 신부님만큼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지요. 그는 그 어려운 상황을 훌륭하게 통제했습니다.

“자, 우리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자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무릎을 꿇지 않은 그 사람을 향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함께 기도하지 않소?”

그 사람은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 말에 신부님께서는 “어려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그 사람은 통로 아래쪽으로 걸어가더니 모자를 벗어들고 헌금을 걷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교회’하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헌금 걷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보다 헌금 걷는 행동을 했던 것이고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 하면 생각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도 ‘돈’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새로운 깨우침을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계신데, 우리들의 작은 생각으로 이 세상 것에서 아직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을 생각해보세요. 그는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이 세상의 고정된 개념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요? 어떻게든 깨우쳐주기 위해서 다양하게 오시는 주님을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주님의 입장을 헤아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고집을 내세우지 맙시다.



끈을 당겨 보세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젊은 장교들에게 연설할 때면 항상 긴 끈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끈을 장교들 앞에 놓아두고 리더십의 중요한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끈을 당겨 보세요. 여러분이 어딜 가든지 그 끈은 따라올 것입니다. 반대로 끈을 밀면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장군은 장교 한 명 한 명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부하들을 이끌 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이끄는 방향으로 올 수 있도록 부하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돌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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