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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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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창세기 18,16-33 사람들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을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도 그들을 배웅하느라고 같이 왔다. 주님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장차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강대한 민족이 되고 세상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복을 빌 것이 아닌가?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어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내려가서 그 하는 짓들이 모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아우성과 정말 같은 것인지 알아보아야 하겠다.” 그 사람들은 걸음을 옮겨 소돔 쪽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냥 주님 앞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물었다. “당신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죄인과 함께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저 도시 안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 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곳을 쓸어버리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을 어찌 죄인과 똑같이 보시고 함께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라면 공정하셔야 할 줄 압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 명만 있으면, 그 죄 없는 사람을 보아서라도 다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 말했다. “티끌이나 재만도 못한 주제에 감히 아룁니다.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때문에 온 성을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저곳에 죄 없는 사람이 사십오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사십 명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여쭙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십 명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또 여쭈었다. “주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십 명밖에 안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삼십 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 하고 대답하시자 그가 또다시 여쭈었다. “죄송하오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이십 명밖에 안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이십 명만 되어도 그들을 보아서 멸하지 않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아브라함이 다시 “주님, 노여워 마십시오.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열 사람밖에 안 되어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사람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자리를 뜨셨다. 아브라함도 자기 고장으로 되돌아갔다.
복음 마태오 8,18-22 그때에 예수께서 둘러서 있는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 율법학자가 와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와서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
저는 장을 보기 위해서 자주 마트에 들립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들도 구입하고, 또 새로운 물건이나 마음에 드는 물건들 역시 구매합니다. 사실 이렇게 자주 마트에 들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식복사 없이 혼자서 생활을 하거든요. 따라서 밥 해먹기 위해서 마트에 들리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의 주방을 보는 순간, 제가 마트에 가서 무엇을 주로 구매하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어떤 것을 구매할 것 같아요? 제가 주로 구매하는 것은……. 바로 사은품 붙은 물건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 사은품 붙은 물건은 그냥 지나가지를 못하는지…….
저는 혼자서 밥을 해 먹기 때문에 큰 것이 소용없습니다. 간장, 식용유, 고춧가루 등등, 조그마한 것을 구입해도 상당히 오랫동안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 주방을 보면 모든 것이 다 큰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간장의 경우 가장 큰 사이즈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혼자서 살면서도 큰 것들을 구매할까요? 바로 사은품 때문이었습니다. 즉, 간장 하나 사면 간장 한 개를 더 준다는 말에 그 큰 간장이 두 개나 되었던 것이지요. 이밖에도 사은품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제 주방에는 많은 사은품이 놓여져 있습니다. 세제는 몇 년 동안 사지 않아도 될 정도 많이 있고요, 사은품으로 받은 양은 냄비도 있습니다. 또한 머그컵 역시 사은품으로 받은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은품이 있는 것을 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조금이라도 알뜰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결코 알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은품을 보고서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구입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물론 그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사야 하는 것이니까, 지금 사는 것이 돈 버는 거야.’
바로 이런 마음이 평생 쓰지 않을 물건으로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내가 정말로 필요한 것만 그것도 조금씩 구입해서 쓰는 것이 더 알뜰한데도 불구하고, 그 물건에 따르는 사은품만을 보고서 쓸데없는 과소비를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들도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즉,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부수적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지금 한 순간의 기쁨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그래서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물질적인 것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심지어 장례까지도 뒤로 하고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수적인 것들이 주(主)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주님만의 나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은품에 속지 맙시다. 과소비의 시작입니다.
등불이 꺼지면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방탕한 삶에 젖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방탕한 삶을 청산했다. 청년은 가로등불을 켜고 끄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다.
하루는 주정뱅이 친구들이 청년에게 물었다. "친구,예수믿는 재미가 어떤가"
청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로등불을 끌 때마다 뒤를 돌아본다네.그것은 내 과거의 어둠이었네. 그러나 내앞에 펼쳐진 등불의 긴 행렬을 보며 위안을 받지.그것은 내 미래의 모습일세"
주정뱅이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다시 물었다. "이 멍청한 친구야.그러면 마지막 등불이 꺼지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마지막 등불이 꺼지면 새벽이 온다네.아침이 오면 등불은 필요없다네"
인생은 결단의 연속이다. 빛은 어둠을 삼킨다. 신앙생활은 곧 인생의 가로등불을 끄는 작업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