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호(대안학교 전문지 [민들레] 발행인)
사는 것이 배우는 것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홈스쿨링, 이른바 ’가정학교’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 방송 매체에 가정학교 사례가 소개된 경우만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대안학교 전문지인 "민들레" 창간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가정학교 이야기를 본 사람들이 ’가정학교 모임’을 시작해 그 동안 일백여 가정이 참여했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 실제로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은 스무 가정 정도지만 앞으로 그 수가 빠르게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살고 있는 정훈이(13세)는 지난해 3월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아빠(김광선 씨, 40세)가 과학과 사회 공부를 도와준다. 엄마(김선영 씨, 40세)는 국어 수학 역사 영어 한문 공부를 도와준다. 오전에는 집중수업 방식으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하루 3시간씩 3~4주 동안 공부한다. 주로 과학 사회 국어 역사를 그렇게 한다. 영어나 한문은 점심을 먹고 나서 40분쯤 적은 양을 익힌다. 수학도 다섯 문제 정도를 풀어본다. ’적은 양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교과서는 없다. 엄마 아빠가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주제를 정한 뒤 관련 부분을 정훈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정훈이는 곧잘 중요한 대목을 그림으로 그린다.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까지 자유시간이다. 동네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기르는 토끼를 돌보거나 집 근처 주말농장에 들르기도 한다. 채소의 싹이 트는 과정이나 토끼와 벌레들을 관찰한 내용을 과학공책에 자세히 기록하기도 한다. 5시부터 1시간 동안은 태권도 도장에서 보낸다. 정훈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다. 나머지 저녁 시간은 하고픈 일을 하면서 보낸다.
가정학교는 말하자면 ’오래된 미래’이다. 학교제도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가정이 곧 교육의 현장이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지역 공동체와 대가족 가정이 교육 기능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을 공장이라는 새로운 일터에 적응시킬 필요가 생기면서 근대 학교제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학교는 그 동안 산업사회의 일꾼을 길러내는 구실을 충실히 해낸 셈이다.
오늘날 교육개혁의 바람은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바람이다. 그러나 공교육이라는 거대한 공룡은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기에는 몸집이 너무 큰 것일까, 아니면 학교제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일까?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은 오히려 공교육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와 가정학교는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가정학교도 대안교육의 새로운 흐름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이는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 가정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캐나다에 사는 하이디 프리스니츠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가는 대신 가족이 꾸려가는 자그마한 잡지사 일을 함께하면서 자랐다. 주문받은 책을 포장하기도 하고 부모님과 같이 인쇄소와 우체국, 은행, 출판박람회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실제로 도우면서 얻은 자신감과 경험, 지식으로 23살에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하이디는 말한다. "삶을 사는 것만큼 삶을 잘 준비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민들레 3호에서).
가정학교의 한계를 넘어
홈스쿨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사회성’의 문제를 든다. 오늘날 사회가 말하는 사회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공동체적인 품성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처세술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안명복 씨(43세)는 외아들 승준 군(15세)을 중학교 1학년이던 97년 하반기부터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아이의 성적에 온 가족이 매달리게 되자 가정생활도 아이의 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사회성 문제에 대해서도 안씨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단언한다.남에게 이길 것을 강요하는 학교의 경험보다는 혼자서 자율적으로 경험한 사회활동을 통해 더 올바른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덧붙여 또래집단 속에서 얻은 경험도 다양한 캠프에 참가함으로써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돕는 노력을 한다. 이를테면 인천에서는 세 가정의 부모가 번갈아 자신의 전공 과목을 맡아 함께 현장학습을 하기도 한다. 가정이라는 공간 또한 학교처럼 권위적이고 닫힌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경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은 셈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다지 평등하지 못한 우리네 가족 구조와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 구조를 생각할 때 가정학교가 참다운 배움의 현장이 되자면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법적인 면에서도 넘어야 할 벽이 높다. 현행법상 부모가 자녀의 의무교육을 이유없이 거부하면 1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어있다. 아직 그런 사례는 없었지만 그 때문에 홈스쿨링을 망설이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현재 초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아이들의 경우에도 서류상으로는 학생으로 남아있다. 교육법에 따르면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자퇴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취학이 불가능한 의무교육 대상자에 대하여 … 취학 의무를 면제하거나 유예할 수 있다.’라는 초중등교육법 제14조 조항에 따라 해당 학교장에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고 서류상으로만 학생으로 남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한편 아예 입학을 안할 경우에는 해당 학교장에게 사유서를 제출하면 교장이 주소지 읍면동장에게 이를 알리고 읍면동장은 해당 교육청의 교육장(감)에게 통보한다. 그에 따라 교육장(감)은 취학의무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학력 인정 문제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검정고시 제도가 없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홈스쿨링을 공식 학력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반면 우리 사회의 경우는 검정고시라는 과정을 거쳐야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가정학교를 하는 사람들은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해 가정학교를 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법적인 보장을 해줄 것을 바란다.
미국에서는 홈스쿨링을 위한 국립연구소를 두고 연간 1억 달러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데 견주어 우리 교육부에서는 아직 가정학교 현황에 대한 조사나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부는 교육개혁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개혁의 흐름 속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경향잡지, 2000년 2월호 / CBCK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