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김가항 성당 끝내 완전 철거
성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지 중국 상해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이 3월30일 360여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완전 철거됐다.
상해 한인천주교 신자공동체 지도 김광우 신부(한국외방선교회)는 "3월30일 낮 12시부터 상해시 철거반이 포크레인으로 건물 철거 작업에 들어가 오후 6시께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또 "다행히 상해 한인천주교 신자공동체와 김정신, 서종태 박사 등이 상해교구에 요구한 김가항 성당 가운데 3칸 기둥과 지붕 보는 손상없이 철거돼 김대건 신부의 성해가 모셔져 있는 상해 포동 당묘교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김가항 성당 철거는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채 작업이 진행됐고, 김 신부도 오후 5시께 통보를 받고 현장에 뒤늦게 갔으나 근접할 수는 없었다고 알려왔다.
김가항 성당은 이에 앞서 3월 25일 상해교구장 진루씨엔(金魯賢) 주교 주례의 고별미사로 360여년의 본당 역사를 마감하고 폐쇄된 후 다음날 26일부터 제대와 십자가 등 성물들과 성당 집기들을 교구청과 인근 성당 등지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갔었다.
상해교구 관리국장 이준충 신부는 김가항 성당이 철거된 것에 대해 "무척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언급한 후 "지난해 7월 상해인민정부로부터 포동 신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김가항 성당을 철거할 것이라는 공식 공문을 처음으로 접수한 날부터 교구에서는 철거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 김가항 성당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주택단지에 종래 김가항 성당 부지 면적(성당 옆 공장부지도 포함)과 똑같은 1000여 평의 땅을 대토 받았고 철거 보상비로 상해정부로부터 시가보다 3배 높은 약 300만 위엔(한화 약 4억5천만원 상당)을 지급 받았다"면서 "2-3년 안에 새 성당을 지어 성 김대건 신부 성해를 다시 모실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상해교구는 그간 김가항 성당 철거에 반대해 지난 1년 여간 △ 360여년의 건축 역사를 지난 중국 화동지역에 설립된 첫 성당 △ 성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 성당 △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김가항 본당 수녀들을 겁탈하려 할 때 본당 신부가 항거하다 무참하게 사살된 순교지 등을 이유로 김가항 성당을 '상해시 문물보호지역'으로 보존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상해 정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교구 관계자는 밝혔다.
<평화신문, 621호(2001년 4월 8일), 리길재 기자>
김가항 성당 360여년 된 성당 건축물로 추정

[사진설명] 철거전 김가항 성당 내부 모습. 앞쪽에서부터 3번째 기둥까지가 360여년 전 초기 김가항 성당 대들보와 지붕 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3개 기둥과 지붕 보는 철거 때 파손되지 않고 김대건 성인의 성해가 안치돼 있는 상해시 포동 당묘교 성당으로 옮져졌다.
현재 철거작업이 한창인 중국 상해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이 성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17일 사제서품을 받았던 그 성당일 뿐만 아니라 17세기 명나라 숙종(1628~43년) 때 중국 화동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성당일 가능성도 높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교회 건축 전문가로 3월34일부터 28일까지 상해를 방문, 김가항 성당을 실측한 김정신(스테파노,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실측결과를 김가항 성당 발전사 연표와 비교해 볼 때 1841년(청나라 도강 21년) 남경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축성되는 시점을 전후로 본 건물이 2차례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김가항 성당은 총 69평의 중국의 전통적 궁중 건축 양식을 빌려온 6칸 목조 건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3칸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이후 지금의 제대쪽과 현 성당 입구에서 2번째 칸이 증축됐고(1번째 증축), 이후 성당 출입문 쪽 1칸이 증축(2번째 증축)됐다"고 설명했다. 명나라 숙종(1628-1643) 때 김씨 일가들이 가옥을 구입해 성당을 꾸몄다가 비교적 큰 가옥(지금의 김대건 성인 기념관)으로 옮긴 후 다시 3칸짜리 성당을 건립한 것이 현재의 김가항 성당의 가운데 부분이며, 이 성당은 1841년 남경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축성된 전후로 1차 증축됐으며, 1872년 800석 규모로 다시 증축됐다고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또 이후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별채로 되어 있는 제의실을 다시 기와로 이어 한 건물로 연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종태(스테파노) 박사가 중국 상해 현지에서 수집한 김가항 성당 관련 자료들을 성당 실측자료와 비교해 본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 후 "김대건 성인은 김가항 성당이 첫번째 증축된 후 5칸짜리 건물이었을 때 사제서품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또 "김가항 성당의 원래 출입구는 지금의 서쪽 방향이 아닌 가운데 3칸 중심의 양쪽 벽면인 남북 방향으로 2군데로 나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3칸 가운데 기둥의 간격이 가장 넓고 남서쪽 성당 건물 끝에 우물이 있는 점을 제시했다.
상해교구장 진루씨엔 주교와 관리국장 이준충 신부도 "지금의 김가항 성당 건물이 부서지거나 이전했다는 기록은 한번도 본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곳 신자들도 이 건물이 360여년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1922년 김가항 성당 북편에 대성당을 건립했으나 1937년 일본군 폭격으로 완파됐고, 다시 1949년에 1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식 성당을 재건축했으나 한 달도 못돼 소실됐다.
한편 상해교구는 김정신 교수의 요청에 따라 김가항 성당 목조구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3칸 기둥과 지붕 보를 철거 때 가능한 한 부수지 않고 잘 보존했다가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새로 지을 때 상징적 구조물로 사용하기로 했다.
<평화신문, 621호(2001년 4월 8일), 리길재 기자>
[인터뷰] 상해교구장 진루씨엔(金魯賢,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주교
"상해교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김가항 성당을 지어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를 모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 천주교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공식적으로 청합니다."
상해교구장 진루씨엔(金魯賢, 86,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는 상해 인민정부로부터 김가항 성당 철거에 따른 보상비를 받았으나 새 성전 건립 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한국 천주교회가 양국 교회 교류 차원에서 새 김가항 성당 신축 사업에 적극 개입, 협력해줄 것을 희망했다.
"새 김가항 성당을 2-3년 내로 신축해 축복식을 가질 예정"이라는 진 주교는 중국교회가 아직까지 성당 건축을 설계하는 데 있어 전례공간 배치 등 많은 부분에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다며 "아직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설계 구상 단계에서부터 한국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면 적극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진 주교는 또 "새 김가항 성당 신축과 관련 상해인민정부로부터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며 받을 필요도 없다"고 강조한 후 "한국교회가 김가항 새 성당을 위해 도와 줄 일이 많다"며 "상해교구를 믿어달라"고 당부했다.
진 주교는 또 "새 김가항 성당 내에 아름다운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반드시 마련할 것"이라며 "새 성전 내에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건립하고 기념비를 마련하는 것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철거될 김가항 원 성당 터에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 또는 표지석 건립 문제에 대해 진 주교는 "상해인민정부에 건의해 볼 것이지만 장담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진 주교는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며 "그 중 김대건 성인을 알게 되고 그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국교회의 영광이며, 개인적으로 가문의 영광이다"고 말했다. 김가항은 김(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진 주교의 성 역시 김(金)씨다.
<평화신문, 621호(2001년 4월 8일), 리길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