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상해 김가항 성당 마지막 미사 봉헌

2001. 3. 31. 오후 2: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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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김가항 성당 마지막 미사 봉헌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해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가 3월25일 오후 2시(현지시각) 상해교구장 진루씨엔(金魯賢)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김가항 성당은 이날 미사를 끝으로 350여년간 상해시 포동대 김가항 35호(현 번지) 자리에서 중국 동부지역 복음화의 산실로 이어왔던 신앙의 역사를 마감했다.

 

김가항 성당은 17세기 명나라 숙종(162~43)때 중국 화동지역 최초의 성당으로 건립된 후 1841년에는 남경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됐고, 1845년 8월17일 김대건 신부가 이곳에서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수품되는 등 한 중 양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중요한 사적지로서 자리잡아 왔다.

 

중국의 개방과 함께 우리 역사안으로 다시 들어와 지난 10여년동안 한 중 천주교회 가교 역할의 중심지로 부상한 김가항 성당은 상해 포동지구의 대대적인 개발사업에 밀려 철거가 결정됐으며 이날 미사를 끝으로 29일경 철거가 확실시 되고 있다.

 

상해교구장 진루씨엔 주교를 비롯한 교구 신부 7명과 김광우 상해한인천주교신자공동체 지도 신부(한국외방선교회)가 공동집전한 미사는 교민 신자 160여명과 중국인 신자 등 5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히 봉헌됐다.

 

진루씨엔 주교는 강론을 통해 "이렇게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게 되어 섭섭함을 금치 못하겠다"며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김가항 성당의 폐쇄를 안타까워했다. 진 주교는 "김가항 성당은 성 김대건 신부를 통해 한중 양국 교회가 교류하는 출발점이 된 중요한 곳이었다"고 설명한 후 "성인의 거룩한 신앙의 모범을 양국 신자들이 본받아 한중 양국 교회가 더욱 활발히 교류하기를 소망한다"고 강론했다.

 

진 주교에 이어 한국교회를 대표해 강론한 김광우 신부는 "성당 철거라는 현실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새로운 성당이 계획대로 잘 건립될 수 있도록 신자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관심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김 신부는 강론후 성 김대건 신부의 '교우들에게 보내는 옥중 서한'을 낭독했다.

 

미사에 참례한 한인 신자들은 "한중 양국 교회는 물론 상해 정부와도 잘 협조가 되어 이 자리에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한중 양국 천주교회의 주요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석이라도 세워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평화신문, 620호(2001년 4월 1일), 리길재 기자>

 

 

성 김대건 신부 성해 당묘교 성당으로 이전 안치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 안치돼 있던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척추뼈 조각)가 3월25일 김가항 성당이 폐쇄됨에 따라 상해시 포동 000에 위치한 당묘교(唐墓橋)성당(주임 공천덕 신부)으로 이송돼 안치됐다.

 

성인의 성해는 김가항 성당 마지막 미사후 김광우 상해한인천주교신자공동체 지도신부와 상해교구 신부들에 의해 당묘교 성당까지 차로 이송됐다. 당묘당 성당에 도착한 성해는 공천덕 신부 주례로 신자들의 성가와 분향 속에 성당 안으로 옮겨진 후 성당 왼쪽 제대에 안전하게 모셔졌다.

 

성해가 안치된 제대에는 김가항 성당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있던 김 신부의 초상화와 석고상, 현판이 그대로 옮겨져 장식돼 있었다. 성해는 김대건 신부 석고상과 함께 유리 감실에 봉인된채 현시됐다.

 

김대건 신부의 성해가 안전하게 안치된 것을 지켜본 상해 한인신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당묘교당 성당도 김가항 성당 못지않는 한국교회의 순례지로 거듭 나길 희망했다.

 

강병조(안드레아) 상해한인천주교신자공동체 회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이상으로 아름다운 성당에 성해가 모셔져 기쁨을 감출 수 없다"며 "이토록 많은 부분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배려해준 상해교구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당묘교 성당은 상해교구 제2의 성지로 루르드 성모를 주보로 모시고 있으며 성당 건축물과 조경이 루르드 성지를 그대로 축소해 지은 아름다운 성당이다.

 

<평화신문, 620호(2001년 4월 1일), 리길재 기자>

 

 

[김가항성당 철거]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서품현장 역사 속으로

 

10여년 전부터 성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지인 상해 김가항 성당에 성인의 동상을 세우려던 한국 천주교회의 숙원사업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인가?

 

상해한인천주교공동체 신자들은 요즘 김가항 성당이 철거되는데도, 한국교회의 사적지임을 알리는 그 어떠한 상징물 조차 하나 세우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적 공황을 느낀다"는 공동체 총무 이성호(갈리스도)씨를 비롯한 이곳 신자들은 김대건 신부의 사적지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데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고 있지 않은 한국 천주교회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가항 성당에 성 김대건 신부 동상을 건립하려는 계획은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0년 7월 순례단을 인솔해 상해를 방문했던 당시 한국천주교성지연구원 원장 고 오기선 신부가 상해교구장 진루씨엔 주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 신부는 진 주교에게 김가항 성당의 옛 모습 복원과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 건립 의사를 밝혔으며 진 주교는 "장애될 것은 하나도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진 주교는 1990년 11월 4일 한국천주교성지연구원 정주성(요셉)신부와 예수회 진성만 신부가 기증한 30센티미터 크기의 김대건 성인 전신 석고상과 1991년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와 동창 신부들이 김대건 성인 성해를 기증하자 한국교회 순례신자들을 위해 김가항 성당 사제관 1층을 개조해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만들고 성해와 석고상, 초상화를 모시게 했다.

 

그 후 김가항성당은 한 중 천주교 신자들의 단골 순례 성당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한국과 중국교회 역사를 잇는 가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진 주교는 최근 김가항 성당 철거 계획을 듣고 직접 상해 인민정부와 상해시 민족화 종교사무위원회 천주교 담당자를 만나 성당 지역 개발을 늦춰줄 것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교구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가항 성당 일대는 벌써 2-3년전부터 개발이 시작돼 현재 포동신구 정부청사와 상해시 수출입 검역국 빌딩, 인민법원 청사 등 공공시설과 20-30층 규모의 대형 금융 관련 빌딩들이 가득 들어차 있거나 건설 중에 있다. 그 가운데 유독 김가항 성당만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 왔다.

 

현지 한인 신자들은 외국인의 종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사정을 감안할 때 중국 내 한국교회 사적지를 개발하고 조성하는 데는 끈질긴 노력과 정성이 요구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상해 한인 신자들은 또 한국인인 자신들보다 한국교회 사적지 보존을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상해교구에 감사한다면서 특별히 한국교회와 상해교구간의 보다 긴밀한 유대를 희망했다.

 

<평화신문, 620호(2001년 4월 1일), 리길재 기자>

 

 

[김가항성당 철거] 김기항 성당서 마지막 미사 드리던 날

 

* 중국인 본당신자들의 따뜻한 마음

 

◎ … 마지막 미사가 있던 3월25일 중국인 신자들은 350여년간 이어왔던 성당 폐쇄의 아쉬움을 기도로 달래려는 듯 낮 12시경부터 성당에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들은 상해 한인 신자들이 오후 1시경 대절한 버스 3대에 분승해 성당에 도착하자 모두 나와 자리를 양보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가항 성당 관리자인 중국인 김금주(金錦珠, 63)씨는 "성당이 철거되게 돼 무척 가슴 아프다"며 "유서깊은 성당이 보전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철거돼야 하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 실측 작업 중 종 발견  

 

◎ … 김가항 성당 철거 전 측량 및 사료 수집차 24일 상해에 온 단국대 김정신 교수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가 성당 실측 작업 도중 25일 아침 '서가회 1921'이라고 적힌 종(鍾)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서 박사는 "이 종이 금가항 성당의 연보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며 김정신 교수에게 탁본을 부탁하기도.

 

* 마지막 미사의 퇴장 성가에 모두가 눈물을

 

◎ … 김가항 성당에서 봉헌된 마지막 미사는 중국어로 봉헌됐으나 성가는 한국어 성가로 노래했다. 퇴장 성가로 가톨릭 성가 287번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를 합창하던 한인신자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려 불러 분위기를 숙연하게 했다. 해설을 맡았던 상해 한인신자 공동체 전례부장 이정훈(요셉)씨는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성인과 관련된 성가를 합창하게 돼 신앙의 후손으로 교회 사적지를 지키지 못한 부끄럼이 앞선다"고 말했다.

 

* 순례자 방명록 복사해 보관하기로

 

◎ … 김가항 성당에 비치된 순례자 방명록에는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주교, 김지석 주교, 김영환 몬시뇰 등 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최석우 신부,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 조광 교수 등 교회 사학자들과 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이 곳을 순례하고 기록을 남겨 이 성당이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교회 사적지였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상해 한인공동체는 역사적 사료가 이 방명록을 복사해 보관하기로 했다.

 

* 김대건 신부의 성해 당묘교 성당에 안치

 

◎ … 상해 한인신자들은 성 김대건 신부의 성해가 당묘교 성당에 안치되자 상해교구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성인의 성해는 처음 당묘교 성당 부속 양로 수녀원 소성당에 안치될 예정이었으나 김광우 신부와 한인신자들의 노력으로 대성당에 안치됐다. 김 신부와 한인 신자들은 "상해교구가 한인공동체의 요구 중 상당부분을 받아들여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며 "이를 계기로 양국 교회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620호(2001년 4월 1일), 리길재 기자>

 

 

[김기항성당 철거] 성당 건물과 부지 실측한 김정신 교수

 

"건축,역사, 신학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 해 김가항 성당에 대한 사료들을 갈무리하는 기초작업이 신속히 전개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3월 24일 상해 김가항 성당 현지를 방문, 이틀간 성당 건물과 부지를 실측한 김정신(스테파노) 단국대 건축학 교수는 "김가항 성당 건물이 철거되고 현 부지가 상해 정부의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사라지게 된 만큼 이곳을 연구해온 각계 학자들이 함께 연대해 김가항 성당에 대한 기초 자료집을 서둘러 낼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실측 결과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으로 사용한 6평 크기의 2층 기와 건물이 가장 먼저 지어졌고 다음으로 현 성당인 90평 규모의 건물이 지어지고, 현재 제의방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제일 나중에 세워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김가항 성당 건물은 일반적인 중국식 건축물로 지붕과 기둥은 목조조 이며 조적 벽체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성당 건축 양식은 중국 서한과 소주 등지에서 현재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성당 건축 양식이 서양 선교사들이 설계했던 바실리카 양식이나 고딕 양식이 아니라 정통적인 중국 색체를 띈 것을 보면 이 건물은 중국인 신자들의 자본으로 지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김가항 성당은 중국식 건축 양식에서 서양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건물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김 교수는 또 김가항 성당은 기둥의 간격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볼 때 처음에는 가운데 간격이 가장 넓은 양쪽 벽면에 출입문이 있는 5칸 짜리 건물로 지어졌다가 1칸이 더 증축되면서 지금의 성당으로 변형됐다면서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의 병천 성공회성당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실측 자료를 근거로 단면도와 평면도 등 설계 도면이 완성되면 대략적인 건축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마련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건물 연혁과 개보수 현황을 기록한 자료 발굴이 시급하다"는 그는 "과거 상해시 지도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620호(2001년 4월 1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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