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김대건 성인 등 조선 신학생 유학 루트

2000. 11. 5. 오후 3: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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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성인 등 조선 신학생 유학 루트

 

 

◎ 중국 내몽골 서만자 : 잊혀진 역사의 땅 서만자(西灣子)

 

서만자는 파리외방전교회와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이 창설한 선교수도회인 라자로회의 선교사들이 '시방'(Sivang)이라 불렀던 중국 내몽골의 작은 마을이다.

 

북경의 북서쪽에 위치한 서만자는 적성과 장가구시를 거쳐 자그마한 시골 읍인 숭례까지 가서도 비포장길로 한참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꽤 먼 거리에 있다. 서울-대전 거리지만 현지 도로 사정상 북경에서 서만자까지는 승용차로 5-6시간이 소요된다.

 

서만자는 북경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라자로회의 선교사들이 1800년대 초반, 북경교구 보호권과 관할권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의 제지를 받아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나면서 북경과 몽골, 만주의 선교 거점으로 개발한 계획 도시다. 당시 마을 전주민이 신자일 정도로 큰 교우촌을 형성했던 서만자는 지금도 가톨릭 신자가 1만명이 넘고 공소만해도 23개에 달한다.

 

이런 서만자가 한국 천주교회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입국을 준비하는 서양 선교사들과 조선교회의 밀사들이 이곳을 접선장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서만자는 신학생 김대건·최양업·최방제가 마카오 유학길에 오를 때 북경을 거치지 않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거점이었다.

 

초대 조선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와 모방 신부,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이곳 서만자에 머물면서 조선교회와 연락을 취했다.

 

교회 사학자들은 달레 교회사의 "김대건·최양업·최방제 일행이 북경을 거치지 않고 돌아서 마카오로 유학을 갔다"는 부분을 인용, 서만자가 초기 조선인 신학생들의 유학 루트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일행이 1836년 12월 서울을 떠나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는데 아마 서만자에서 상당기간 머물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차 소장은 "마카오에서도 김대건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김대건 일행은 서만자 신학교에 머물면서 라틴어 등 신학에 필요한 기초 학문을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의 박해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서만자의 성당과 신학교, 성직자 묘지 등은 완전히 파괴됐다. 파괴된 성당 터에는 공산당 선전집회 장소인 공회당이 세워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 그 터를 되찾아 공회당 건물을 개조해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 몽골 유목민들의 혈거풍습이 남아있는 서만자. 교회사적 자취가 사라지기 전에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가 관심을 갖고 발굴, 보존해야 할 소중한 교회사적지다.

 

<평화신문, 2000년 7월 9일 연중 제14주일 제585호,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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