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황사영의 생가터는 어디일까?
◎ 황사영 생가터 진위 논란
'강화도 월곳리인가, 서울 아현동인가, 아니면 경기도 양주군 부곡면인가.'
순교자 황사영(1775∼1801·알렉시오)의 생가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취재차 강화도를 찾아간 지난달 28일. 인천교구에서 설치한 안내 표지판을 따라 어렵사리 도착한 강화읍 월곶리 대금동 황사영 생가터에는 '이곳은 황사영의 생가터가 아닙니다'라는 내용의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창원 황씨 장무공파 종회 황팔주 회장은 안내 표지판을 통해 "고증 결과 순교자 황사영 문중의 주소지는 경기도 양주군 부곡면"이라며 "더 이상 천주교에서 이곳을 황사영 생가터로 오인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황씨 문중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인천교구에서 이곳에 황사영 생가터라는 안내 표지판을 설치한 것에 대해 민망함을 금할 수 없다"며 조속한 시일내에 성지 안내 표지판을 철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회 내부의 의견도 분분하다.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는 강화도 생가설을, 수원 가톨릭대 하성래 교수는 서울 아현동설을 내세우는 등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하 교수는 지난 98년 5월 교회사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황사영의 생가터는 강화도가 아닌 서울 아현이라는 주장을 내놓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 교수는 당시 "강화도의 집은 황씨 문중이 대대로 살아온 종가일 뿐"이라며 "황사영이 1790년 진사에 합격했을 당시 기록에도 탄생지가 아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교구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강화도에 터전을 둔 황씨 문중이 박해 당시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생가터를 변경했을 뿐 황사영은 강화도 태생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황사영 생가터와 관련된 문헌의 기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생가터가 강화도라는 기록은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창원 황씨 대동보, 작자 미상의 눌암기략(訥菴記略)에 나타나 있다. 서울 아현이라는 근거는 이기경의 벽위편(闢衛編) - 황사영 결안(結案), 진사합격자 명단인 사마방목, 영정조실록 등이다. 최근 들어서는 창원 황씨 문중이 족보와 문중내 구전 사료들을 근거로 황사영 생가터가 경기도 양주군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 사학자들은 황사영 생가터 논란은 조속히 종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순교자 황사영 탄생지는 바로 교회 사적지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시성 절차법에는 "주교나 그 대리인은 시복시성 예비심사를 마치기 전에 하느님의 종(시복시성 대상)이 살던 장소, 침실, 선종한 장소가 있다면 그곳을 성실히 검증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평화신문, 2000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일 제590호, 우광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