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가족과 함께 떠나요: 죽산 순교성지

2000. 11. 5. 오후 1: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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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죽산 순교성지

- 병인박해때 피로 물들었던 땅 그날의 '잊은 터' 성역 새단장 -

 

 

서울에서 1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경기도 안성 죽산 순교성지. 목장과 저수지가 있는 성지 주변의 한가로운 농촌 풍경은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혀있는 도시인들의 갑갑한 마음부터 탁 트이게 해준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38번 국도 안성 방향으로 300m정도 가면 왼쪽이 바로 성지 초입. 큰 돌에 '죽산성지'라고 새겨놓았다. 여기서 800m 들어가면 성지다. 이 정도면 교통이 무척 편리한 곳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성지까지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한여름 햇빛을 받으며 사람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134년 전, 이 길은 천주교 신자들이'사학 죄인'으로 몰려 끌려갔던 길이 아닌가. 모진 고문으로 초주검이 되어 끌려가면서도 하느님을 버리지 않았던 순교자들. 처형지인 성지로 가는 동안 죽산의 눈물겨운 순교사화들이 떠오른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한 죽산 순교성지를 가족들이 다 같이 순례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부모들은 특히 순교성지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성지로 가는 동안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부모도, 아이도 모두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죽산의 순교사화는 다른 순교성지에 비해 처절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60세의 여기중은 일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아내와 어린 아들과 같이 한 날 한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죽산에서는 부자,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많았다.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3족을, 그리고 부자를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던 당시 사회에서 죽산의 박해 참상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오죽했으면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렸을까.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순교지에서 이름없이 죽어갔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이름이 밝혀진 이들만 25명에 달한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陣)터'였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여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는 뜻으로 불려진 이름이다.

 

성지에 다다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기와를 얹은 담이 쳐있고 대문도 세워져 있다. 그리고 대문 위에는 다른 성지에서는 볼 수 없는 '성역'(聖域)이라고 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담장 안의 모습 또한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파란 잔디밭에 돌로 만든 묵주, 나란히 누워있는 묘지, 피에타 상, 14처, 예수부활상 등이 보인다.

 

담을 따라 양쪽으로 마치 성모님이 팔을 벌려 품어안은 듯한 모양으로 돌 묵주들이 세워져 있는 '로사리오 길'은 무릎을 꿇고 양팔기도 5단을 바치며 걷는 길이다. 지름이 1.3m 크기인 묵주알과 묵주알을 받쳐주는 삼각형 모양의 돌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묵주의 기도가 끝나는 양쪽 끝에는 피에타 상이 세워져 있다. 십자가상에서 죽은 아들 예수를 껴안고 우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우리들이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중앙 계단을 올라가면 제대가 있고 그 뒤에 25기 묘가 줄지어 있다. 이름이 확인된 25위 순교자 묘지이고 무명 순교자 묘가 중앙에 둥근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묘 앞에 서있는 십자가상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랐음을, 그 뒤 예수 부활상은 부활이 없다면 결과적으로 순교는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부활상 양 옆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의 둥근 모양은 이곳에 잠든 순교자들이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광을 상징하고 있다. 또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소성당이 있다.

 

이 같은 모습에 성모, 순교자, 성체 신심의 의미가 다 담겨있다고 성지주임 이용남 신부는 설명하고 성모신심은 땀의 순교, 순교자 신심은 피의 순교, 성체 신심은 땀과 피의 순교가 결합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지에는 신자들이 쉴 수 있는 원두막이 5개 마련돼 있고, 주자창에는 자동차를 세우는 줄을 따라 매실, 살구, 배나무 등 어린 과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앞으로 이 나무들이 자라면 그늘이 되어 자동차의 더위도 막아줄 수 있으리라.

 

나눔의 방 또한 순례 온 신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들이 음식을 장만해와 직접 끓여먹을 수 있는 주방시설도 갖춰져 있어서 미리 연락을 하면 된다.

 

이곳 성지에서 6km 떨어진 곳에 '두들기 마을'이 있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포졸에게 잡혀가는 호송길에 이 주막거리에서 잠시 쉬어가며 온갖 트집을 잡아 줄줄이 묶어 둔 신자들을 두들겨팼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성지에서 안성방향으로 1.5km 거리에는 죽주산성이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죽주산성 입구는 그러나 지난 수해 때 파헤쳐진 길이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고, 산성 안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성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성지에서 2km 거리에는 용설저수지, 무용가 홍신자씨의 무용단 '웃는돌'과 야외공연장이 있고, 임꺽정이 잠시 머물렀다는 칠장산과 칠장사도 인근에 있다.

 

<평화신문, 2000년 8월 27일 연중 제21주일 제592호, 이연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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