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성지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당산철교쪽 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면 한강변에 우뚝 선 절두산성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요즘 절두산 성지는 공사가 한창이다. 성지종합발전계획에 따라 50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절두산성지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순교자 기념성당과 성해실 보수, 순교기념관의 박물관 용도변경, 순교자 기념광장 건립, 절두산 순교자현양탑 건립, 교회사 유물공원 조성 등의 공사가 끝나면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성지로 거듭 태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절두산성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을 비롯해 오타 줄리아 묘, 박순집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로 시작된다. 특히 일가족 16명이 한꺼번에 치명한 박순집 일가의 이야기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순교자 묘역을 지나면 벼랑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기념관이 우리 전통문화와 순교자들의 고난을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접시모양의 지붕은 옛날 선비들의 전통적 의관인 갓을, 구멍을 갖고 있는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진 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한국 최초의 대주교인 노기남 대주교가 타고 다녔던 포니 승용차 전시장을 지나면 절두산기념관에 이른다.
한국교회의 최대 박물관인 이 순교기념관에는 교회사적 유물 750점, 서적류 1258책, 각종 형구 3000여점이 소장돼 있다. 그 중에서도 천주교회사에서 귀중한 자료로 손꼽히는 최양업 일대기 31점과 유중철·이순이 동정부부 일대기 27점이 눈길을 끈다.
기념관 밑에 있는 지하묘소에는 병인박해 때 절두산에서 참수된 28위의 성해가 모셔져 있다. 박해의 정도와 규모로 보아 순교자가 수천명에서 1만명까지 추산되지만 이의송 일가족을 포함해 31명의 이름만 확인된 상태다.
생긴 모습이 용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용두 또는 잠두로 불렸던 이곳은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죽어갔길래 그 이름이 절두산일까.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은 그때의 피의 순교를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평화신문, 2000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일 제594호, 김정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