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터] 가족과 함께 떠나요: 새남터 성지

2000. 11. 5. 오후 12: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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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남터 성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강철교를 지나기 직전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통 한옥 기와집이 보인다. 바로 그 기와집이 순교성지인 새남터 기념성당이다.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처음 처형당한 뒤 수많은 신앙인들이 거룩한 순교의 피를 뿌린 장소. 서소문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라고 한다면 이곳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모두 11명의 성직자가 치명돼 '사제들의 순교지'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주변에 수목이 울창했다지만 지금은 주위의 고층 아파트에 파묻혀 있어 왜소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성당으로 들어가 숨져간 성직자들의 거룩한 죽음을 대하면 그런 선입견은 천주교에 대한 자긍심으로 바뀐다.

 

성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단아한 한복 차림의 성모상은 이곳을 찾은 모든 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줄 만큼 자애롭다. 기념성당 입구에는 지난 84년 이곳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인이 새겨진 대성당 머릿돌이 놓여있고, 기념성당은 1층의 소성당과 2층의 대성당으로 돼있다. 건축양식이 기존 교회건축양식과 달리 전통 한옥식이어서 그런지 더욱 친근감이 든다.

 

1층 소성당 입구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11명의 성직자 이력을 자세히 적어놓은 안내문이 걸려있다. 그 가운데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외국인 신부이자 중국 출신인 주문모 신부의 생애에 눈길이 머문다.

 

주 신부는 목자 없이 스스로 교회를 세운 조선 교우들을 위해 1795년 북경교구에서 파견한 인물이다. 주 신부는 조선에 와있는 동안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무수히 죽어가는 것을 보고 중국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고민 끝에 주 신부는 북행 길에 나섰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들과 생사를 함께해야 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새남터에서 최후를 맞았다.

 

주 신부 순교 후에도 1839년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이곳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으며 그로부터 7년 후인 병오년에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박해의 칼날을 받았다.

 

<평화신문, 2000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일 제594호,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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