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 가족과 함께 떠나요: 당고개 성지

2000. 11. 5. 오후 12: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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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성지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올라 다다른 당고개성지. 첫 느낌이 성지치고는 너무 작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절두산, 새남터, 서소문과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청계산의 아침 구름, 관악산의 저녁 안개, 동작나루의 돛단배 등 이른바 '용산8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당고개를 꼽았을 만큼 전망이 뛰어나다.

 

이곳에서는 기해년(1839년) 12월27일(음력)부터 이틀에 걸쳐 신자 10명이 처형됐다. 성지 전체 면적은 100여평이 될까 말까 하고 가운데 순교자 현양탑이 있다. 신앙의 증거자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장소에 세운 야외 제대가 순례자의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순교의 화관을 쓴 교인은 박종원(아우구스티노) 홍병주(베드로) 권진이(아가다) 이경이(아가다) 손소벽(막달레나) 등 9명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처형됐는데도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순교자가 있다. 최경환의 부인이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마리아)다. 그 이유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순례자들의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본래 부모와 자식을 함께 투옥시키는 것은 국법에도 없었지만 큰아들 최양업을 사제로 봉헌하기 위해 유학 보낸 최경환 일가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옥에 같이 투옥된 어린 아이들에게 밥이 나오지 않자 이성례는 어쩌다 밥 한덩어리가 나오면 모두 애들에게 먹이고 자신은 굶기가 일쑤였다. 마침내 세살짜리 막내는 옥에서 엄마의 마른 젖을 빨다 죽고 말았다.

 

이성례는 자식 네명을 옥에서 굶겨 죽일 것 같아 배교하겠노라고 말하고 나왔다. 아이들과 문전걸식하던 이성례는 얼마 후 자식들이 동냥을 나간 사이에 남편 최경환이 있는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 치명의 길을 걸었다.

 

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성례의 애절한 삶이 당고개 언저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평화신문, 2000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일 제594호,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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