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순교영성은 실천이다.

2000. 11. 5. 오후 12:15:43

글자

 

'순교영성'은 실천이다

 

 

얼마 전 로마에서 공부하다 잠시 귀국한 지기를 만났다. 대화 도중에 로마에서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로마에서는 한국교회를 '그냥 아시아 한쪽에 있는 하나의 지역 교회로만 볼 뿐'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표현 속에는 한국교회가 '별 볼일 없는' 교회라는 평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뿌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뿌리가 없다는 말은 두가지로 이해됐다. 하나는 2000년 역사를 지닌 로마에 비해 한국교회는 200여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직 '어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교회가 활기차 보이지만 속 뿌리, 곧 '영성'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가 자기네들보다 일천하다는 뜻이라면 그렇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영성이 없다는 뜻이라면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그런지 좀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영성으로 흔히 '순교 영성'을 꼽는다. 교회 초창기 약 100년 동안 큰 박해 속에 수만명의 선조들이 순교의 피를 쏟았고, 이들 중 103위를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순교자들이 흘린 이런 피와 땀이 오늘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교회의 신자들이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이렇게 자랑스런 순교의 영성이 있는데 영성이 없다니, 로마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인가.

 

그런데 순교의 영성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것,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단 하나뿐인 생명을 바치면서 하느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우리의 수많은 순교 선조들은 어떻게 그런 용기와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교회사 학자나 관련 분야 사제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순교의 영예가 하루 아침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교자들은 평소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 사랑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크고 강하다는 것을 점차 확신하게 됐다. 순교는 이런 하느님 체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에 있어서 순교의 영성은 두가지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확신하는 일이고, 둘째는 목숨을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그 체험을 증언하는 일이다. 따라서 관건이 되는 것은 오늘의 사회 안에서 우리 교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과연 어느 정도나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면서 확신하고 있으며, 또 그 사랑을 행동으로 증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9월, 대희년의 순교자 성월을 맞고 있다. 이미 대희년이 시작되면서부터 순교 성지들에는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기리고 희년 전대사도 얻으려는 신자들의 순례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순교 선조들을 기리고 전대사를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순교의 영성을 사는 일이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실천을 통한 신앙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마태 15, 8-9).

 

<평화신문, 2000년 9월 3일 연중 제22주일, 제593호, 이창훈(취재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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