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명동성당과 인접해 있고 지하철을 이용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성지가 바로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어 있는 서소문 성지다.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을 이용해 서울역에서 하차, 서울역 출구로 나와 염천교를 지나면 바로 앞쪽이 서소문공원이다.
사방이 고층건물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서소문공원에 들어서면 도심 한가운데 이런 아늑한 공간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하다. 잔디밭 사이로 난 길과 몇점의 조각품, 주변 공간과 어우러진 나무들이 한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이런 풍경을 뒤로 하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서소문밖 순교 현양탑'에 시선이 머문다. 이 탑은 신유·기해·병인박해 때 서소문밖 형장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고 쓰러진 44위의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가 서소문밖 형장에서 순교했으니 가히 한국 최대의 성인 탄생지라고 부를 만하다.
원래는 1984년 103위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순교자현앙위원회에서 세운 순교현양탑이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주변 분위기의 변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모양의 현양탑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관할 교구인 서울대교구가 지난해 현재의 '서소문밖 순교 현양탑'을 건립했다.
특히 서소문 성지는 '평신도들의 순교지'라는 점이 '성직자들의 순교지'인 새남터와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높게 솟아있는 탑을 보고 있노라면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을 비롯해 수많은 평신도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도 피로 신앙을 증거한 한국교회의 긍지가 느껴진다. 그들의 거룩한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반석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현양탑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m쯤 가면 고려시대 여진정벌의 혁혁한 공을 세운 윤관 장군의 동상이 나온다. 북방 오랑캐인 여진족을 물리치던 장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기세다.
공원을 둘러봤으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중림동성당이다. 서소문공원에서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중림동성당은 명동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립된 성당으로 약현성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몇년 전 화재로 본당 건물이 일부 훼손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지만 중림동성당은 명동성당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사의 양축을 이뤄 왔던 곳이다. 성당 구내에는 서소문밖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자기념관이 마련돼 있어 순교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평화신문, 2000년 9월 3일 연중 제22주일, 제593호, 김정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