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교리문제집- 18. 한국의 성지

2006. 10. 25. 오전 9: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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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한국의 성지


1. 1881년 이래, 신학생들의 페낭으로의 유학이 기후 등의 문제로 어렵게 되자, 블랑 백 주교는 1885년 페낭서 돌아온 신학생 4명과 새로 입학한 3명 등 총 7명으로 조선 땅에 독자적으로 신학교를 세워 운영하게 됩니다. 박해는 가라앉았으나 아직 위험하였던 시기라 산골에 세워지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용산으로 옮겨갔지요? 이 신학교가 세워졌던 곳은 어디일까요?

☞ 부흥골 (범골).


2. 김대건 신부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새남터 형장에서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김 신부의 시체는 40일 동안이나 백사장에 가매장된 채 군졸들의 엄중한 감시 하에 있게 되는데, 이 때에 17세에 어린 나이로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거두어 꼬박 7일간 200리의 산길을 걸어, 고향인 미리내로 가서 자신의 종산에 김대건 신부를 안장한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 이민식 원선시오.


3. 미리내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초대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입니다. 한편 김대건 신부 묘 옆에는 또 한 분의 묘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분은 김대건 신부에게 부제품을 준 분으로서, 평소 김대건 신부를 잊지 못하고 지내다가 죽으면 김대건 신부 곁에 묻히게 해 달라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누구일까요?

☞ 페레올 고 주교.


4. 다산 정약용에게 종부성사를 준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로서 조선에 처음 온 모방 나 신부가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망월리 한경변의 거북등처럼 생긴 야트막한 야산을 낀 자연부락으로, 초기 교회 교우마을이었고 순교자 김성우(안당)을 비롯하여 7분의 순교자가 묻혀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 구산.


5. 천진암에서 강학회를 운영하면서 학자들은 천주학이라는 학문적 지식을 천주교의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러한 신앙을 노래를 통하여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 있네’로 시작하는 천주공경가의 지은이는 누구였을까요?  

☞ 이벽.


6. 이곳은 권철신이 학문 연구를 위해 머물던 곳으로, 천진암과 함께 강학회가 열리던 곳이기도 합니다. 천진암과 더불어 한국 천주교 발상의 기반을 구축하는 요람의 구실을 했던 이곳은 어디일까요?

☞ 주어사.


7. 두 번에 걸친 대박해인 기해박해와 병인박해로 무려 350여명의 교우들이 치명한 곳으로, 이곳에서의 최초의 순교자는 구산에 묻혀있는 한덕운 순교자입니다. 구산에 인접해 있으며, 살아서 동문으로 걸어 들어간 교우들이 죽어서 시체가 되어 수구문으로 나왔다고 전해지는 이 성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남한산성.


8. 안양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는 수리산이 있습니다. 이곳은 19세기 초 박해를 피하여 신자들이 숨어 들어 화전을 일구고 담배를 재배하며 교우촌을 형성하였던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아들 최양업 신부를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고 하여 1839년 기해박해 때 40여 일 간의 고문 끝에 순교한 최양업 신부 아버지의 유해가 안장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인품에 오른 이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의 이름은 어떻게 될까요?

☞ 최경환 프란치스꼬.


9. 충청도로 가는 산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서 박해시대에 전교여행을 다니는 선교사들의 신변 안전을 도모할 수가 있어 많이 이용했던 곳으로, 앵베르 범 주교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이곳 공소에서 은신하였다고 합니다. 현대 성당으로 되어있는 이 성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왕림성당.


10. 이곳은 한국의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가 최초로 사목 했던 동골 마을이 있고, 베르뇌 장 주교가 3개월 가량, 깔레 신부가 1년 남짓 사목 한 곳입니다. 지금은 무명 순교자의 묘소가 산재해 있고 기념 성당과 연자 맷돌로 14처를 세워놓은 동산이 있는 청주교구에 속한 이 성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배티 성지.


11. 이곳은 성 황석두 루가, 성 이윤익 요한의 탄생지이고, 최양업 신부의 전교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 곳 출신의 전교회장 추순옥을 비롯 김 마르틴, 마태오 부자 등 여러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국내에서 가장 큰 십자가와 성모상을 비롯하여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인 5인상, 황석두 묘소 등이 잘 정비되어 있는 이 성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연풍 성지.


12. ‘죽산’은 삼남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으로서, 병인박해 때 살육이 자행되던 곳으로, 기록에 남은 순교자만 24명이나 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그 죽산에서 8 Km 떨어져 있으며, 신자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심문의 여지도 없이 끌어다 죽이거나 생매장했다고 알려진, 죽산의 사형터 이름은 무엇일까요?

☞ 이진터.


13. 한강 상류 팔당에서 양수리 한강물 사이로 머리를 불쑥 내어민 곳에 ‘마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인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 4형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다채로운 교회 행사가 마련되는 등 많은 교회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그 성지에는 누구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을까요?

☞ 다산 정약용.


14. 이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로서 그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가 내포지방의 사도 이존창으로부터 영세 받은 후 교우마을을 이루게 된 곳입니다. 또한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로 부터 32년간 4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 가문이 생활했던 이 곳은 오늘날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 솔뫼.

  대전교구에서는 이곳을 성역화하여 뒷동산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동산과 기념탑을 세웠고, 생가터 옆에는 피정의 집을 세워 대전교구뿐 아니라 한국 교회 신자들의 영적 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5. 이곳은 최양업 신부와 최 신부의 부친인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곳입니다. 또한 병인박해 때 해미에서 혹은 홍주에서 순교한 치명자의 묘소로 추정되는 30여기의 묘가 줄무덤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 다락골.


16. 이곳은 박해 80여년간에 걸쳐 수천명의 교우들이 순교하여 ‘신앙의 묘자리’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당시 내포 지방 여덟 고을 중 유일하게 진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포 일원의 교우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형, 효수형, 생매장 등으로 순교하였습니다. 1975년 이곳에 순교탑이 건립되었고, 또한 현재 지석루 앞에는 순교돌이 옛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한 채 서 있기도 합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 해미.


17. 갈매못 성지는 프랑스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여 신앙을 전파했던 한 분의 주교와 오매스뜨르 신부, 위앵 민 신부 등 두 명의 사제, 그리고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 등 다섯 분이 병인박해 때 군문효수를 당한 곳으로서, 이 다섯분 모두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으로서 이곳에서 순교하여 성인품에 오른 그 한 분의 주교는 누구일까요?

☞ 다블뤼 안 주교.

  당시 조선 제5대 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안 주교는 황석두 루가와 함께 당진 합덕읍 거더리 마을에서 서울의 포교들에게 잡혔는데, 안 주교 체포 소식을 들은 오 신부와 민 신부도 자수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서울 의금부로 압송되어 와서 심한 고문과 문초를 받았고, 대원군에 의해 사형명령이 내려지고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고종이 병을 앓게 되고, 그의 혼인날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서울 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불결타하여 충청도 보령으로 옮겨서 사형을 집행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8. 이곳은 공주로 들어오는 입구의 오른쪽 언덕에 있으며,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꼬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처형당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병인박해 때는 손자선(토마스). 최지혁 등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여 대전 교구 신앙 요람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 황새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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