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교리문제집 - 12. 교황

2006. 10. 25. 오전 9:36:27

글자

12. 교황


1. 교회에서는 초대 교황으로서 사도 베드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 16장 18절의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그 후계자들을 교황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 교황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의 이전 이름과 그가 사도로 뽑히기 전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 시몬, 어부.

  베드로는 반석, 즉 바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사도 베드로를 선두로, 초대 교회의 30여명의 교황들은 거의가 다 순교가 아니면 옥사 또는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박해자는 로마의 황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야만적 폭력을 통해 끊임없이 교회와 교황에게 도전하여 박해를 가하였는데, 결국은 십자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고 그리스도교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은 황제는 누구일까요?

☞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 때부터 교회는 지하생활을 청산하고 교황은 라테란 궁전에 거처를 정하고 또 그곳에 성 요한 라테란 대성당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로 이 교회가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교사인 로마교회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습니다.


3.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 주교직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전체 교회에서 특수한 지위와 의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의해 제자들 중에서 수위권을 부여받았고, 로마교회의 최초의 주교로서 그 수위권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 베드로를 최초의 교황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교황은 누구일까요?

☞ 리노.


4. 사도 베드로 이후 역대 교황의 역사를 살펴볼 때, 교황들 중에서 많은 성인들과 복자들이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대(大) 교황’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교황이 두 명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은 성 레오 대교황입니다. 그는 440년부터 461년까지 재직하였으며 그 기간 동안 당시 로마시의 수호자였으며 로마교회의 최고 통치권에 대한 기반을 확고히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이 붙었습니다. 그렇다면 “대 교황‘이라고 불리우는 또 다른 한 명의 교황은 누구일까요?

☞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 또는 그레고리오 1세.

  그는 수도회에서 먼저 일어나 개혁운동을 받아들여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주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이른바 그레고리오 개혁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교황은 그리스도교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서 모든 주교들의 권리에 간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원리적 견지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제왕들도 파면할 수 있었습니다.

5. 중세 말기에 들어서면서 교회와 교황직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교회의 개혁이었습니다. 원래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했으며, 항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특히 당시에는 루터의 교회개혁운동을 비롯해 교회에 폐해가 컸고 또 많았기 때문에 더욱 교회개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소집되었으며,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개혁에 대한 교회 교도권의 최고의 대답과 더불어 가톨릭의 신앙교의에 대한 명확한 선언을 함과 동시에 가톨릭 교회내부의 참된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던 이 공의회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 트리엔트 공의회 또는 뜨리덴띤 공의회.

       

6. 시대적 요구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교황 성좌는 300년만에 성인교황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교회 전체를 내적으로 쇄신하는 것을 교황직의 제일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추기경단부터 철저하게 개혁하고, 교회개혁의 일환으로 새로운 교리서 미사 경본, 성무일도등을 간행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요?

☞ 교황 비오 5세(1566-1572)).


7. 역대 교황 중, 포교 사업에 큰 관심을 두어 현지인에 의한 교회의 자립에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가톨릭 액션등을 통해 교회에 대한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 등 그 역할을 높인 교황은 누구일까요?

☞ 교황 비오 11세.

  교황 비오11세는 1914년부터 1922년까지 재임하였으며 ‘액션 교황’이라고도 불립니다.


8. 역대 교황 중, 과도기적 교황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재일치를 교황직의 중요한 임무로 인식하고 이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였으며, 추기경단을 늘려 국제적 균등화를 위해 노력한 교황 요한 23세가 개최한 공의회의 정식 명칭은 무엇일까요?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9. 교황 요한 23세에 이어 선출된 교황으로 팔레스티나 성지를 순례함으로써 교황사상 성지를 찾은 최초의 교황이 되었으며, 세계 각국을 통해 교황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 놓은 교황은 누구일까요?

☞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바오로 6세는 이전의 교황들이 바티칸에서 나오지 않은 것과는 달리, 사도 바오로를 본받아 세계적 복음의 여행자가 되려 했습니다. 실제로 1964년 인도 봄베이의 국제 성체대회에 참석한 것을 비롯하여, 1965년에는 미국을 방문하고 국제연합에서 연설도 하였으며,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보편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1970 말에는 홍콩도 방문하였습니다.


10.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522년이래, 폴란드 출신으로 이탈리아인이 아닌 첫 교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기 전의 직책과 이름은 무엇일까요?

☞ 추기경, 카롤 보이티야.


11. ‘바티칸’ 시에서 매년 발행하는 ‘교황청 연감’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로부터 현재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에는 264명의 교황의 이름과 순서와 그 재직 기간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교황청의 발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가장 신빙성을 지닌 것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교황청 연감 자체에도 나름대로 역사와 사연이 있습니다고 합니다. 즉 연감이 수정된 것입니다. 그 예로 비오 12세가 한 때 262대 교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계산대로 합니다면 현재 재직중인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266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감을 수정한 교황은 누구일까요?

☞ 교황 요한 23세.

  교황 요한 23세는 1958년에서 1963년까지 재직하였습니다. 원래 그의 본 이름은 ‘론 칼리’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23세란 이름의 교황은 그 이전에도 있었는데 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378-1417년에는 세 군데에서 교황들이 난립하였는데, 하나는 로마계였고 하나는 피사계였으며 또 하나는 아비뇽계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세 파의 교황들 중에서 아비뇽계 교황들만을 로마교황에 대립하는 대립교황으로 보고 정식교황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교황청 연감은 나중에 선출된 론 칼리 요한 23세의 의견에 따라 피사계 교황들도 정식교황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피사계 교황으로서는 알렉산델 5세와 요한 23세가 있었는데, 후에 피사계 교황을 정식 교황으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논쟁에서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미에서 론 칼리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자신의 명칭을 요한 23세로 정하였습니다.


12. 교황에 관련된 권한 중에는 ‘무류권’과 ‘수위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수위권이란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로서의 교황은 전 교회와 모든 교구에 대해 완전한 주교권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류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교황은 전 그리스도교 신자의 우두머리로서 직책상 신앙과 도덕에 관해서 어떠한 발언을 하면, 교황의 그와같은 결정은 교회의 동의에 의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르칠 수 없고 또 변경될 수도 없다.

  즉 무류권은 교황이 세상을 향해 어떤 진리를 장엄하게 정의할 때 그르칠수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무죄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 편,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확립한 교황은 비오 9세입니다. 또한 그는 1846년부터  1878까지 재임함으로써 역대 교황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 재임한 교황이며, 교황의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황의 수워권과 무류권을 확립하였습니다.


13. 오늘날 교황을 뜻하는 ‘파파(papa)’라는 명칭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본뜻은 ‘아버지’입니다. 이 호칭이 로마주교 즉 교황에게 국한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중엽부터이고, 11세기부터는 완전히 교황에게 국한된 호칭이 되었습니다. 1983년도 ‘교황청 연감’에 의하면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밑에 무려 9개의 명칭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즉 로마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으뜸 사도의 후계자, 전교회의 대사제, 서구의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주교, 로마 관구의 수석 대주교, 바티칸 시국의 원수, 하느님의 종들의 종 등인데, 이 중에서 가장 늦게 생긴 명칭은 무엇일까요?

☞ 바티칸 시국의 원수.

  이 명칭은 1929년 교황청과 이탈리아 국가와의 정교조약을 통해 바티칸 국가가 창설됨으로써 비로소 교황에게 주어졌으며, 여러 가지 교황의 명칭 중 유일하게 정치적 지위를 나타냅니다. ‘교황청 연감’에 보면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제일 큰 활자로, 로마 주교를 다음으로 큰 활자로 표시함으로써 기타 명칭들에 비해 이 두 명칭이 가장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4. 조선에 교황의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610년대이고, 한편 교황청에 조선 나라가 알려진 것은 166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는 1831년 조선교구 설정에서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정식관계가 실현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부터 조선교구는 ‘대목구’로서 아직 포교지였고, 따라서 그 교구장도 교황을 대리하여 교구를 관할하고 있었으므로 지역교회로서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교회와 교황청과의 관계가 정식으로 실현된 년도는 몇 년도일까요?

☞ 1962년.

  1962년 3월 10일에 교황 요한 23세의 교황 서한을 통해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됨으로써 비로소 정식관계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에 3개의 교회 관구 즉 서울 관구, 대구 관구, 광주 관구가 설정되었습니다. 


15. 최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대적 변화와 교회법 개정에 따라 교황 선거 방식도 일부 개정하였습니다. 이는 지난 75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련했던 교령을 개정한 것인데, 그렇다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새로운 교령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주님의 양떼.

  교황의 선거가 이루어 지는 회의를 ‘콘클라베’라고 부르며, 그 뜻은 열쇠로 잠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6. 새로운 교황 선거법이 마련되기 이전까지는 투표가 아닌 전원합의나 대표단에게 선출을 위임하였습니다. 즉 교황이 비밀 투표로 선출되지 않았을 때에는, 선거인의 전원 합의에 의한 선출(‘영감’을 통한 방법)이나, 9명에서 15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에게 위임하는 방법(‘절충’을 통한 벙법)을 통해 교황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새 선거법에 의하면 교황 후보자는 추기경단의 일정 수 이상의 찬성만 얻으면 당선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 후보자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추기경단의 몇 분의 몇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할까요?

☞ 2/3 이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75년교황 바오로 6세가 마련했던 교령을 개정하여, 교황 후보자가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해 선출이 지연될 때 실시하던, 투표가 아닌 박수나 환호에 의한 전원합의 선출이나 별도의 추기겅 대표단에게 위임하는 방법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새 법에 의하면 선거인단의 숫자는 종전처럼 12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80세 이상의 추기경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의장 밖에서 교황 선출을 위한 전세계 신자들의 기도를 촉구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17. 새로운 개정령에 따르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투표기간이 아닌 회의기간 중, 어느 한 곳에만 격리되지 않고, 최근에 건립된 ‘성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게 됩니다. 물론 회의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엄중히 차단한다는 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황 선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교황 선거를 위한 회의 기간 중에는 어느 한 곳에만 격리되었다고 하는데, 그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 시스틴 성당.

  이 곳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때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성서의 내용을 벽화로 그린 대작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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