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로마 10,9-18/ 마태 4,18-22)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망을 던지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을 보시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갈릴레아 호숫가에는 아마도 더 많은 어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아 호수는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어망을 던지는 어부,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네 명만 부르셨는데, 그들에게서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그들 외에도 다른 어부들도 보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그들을 택했겠습니까? 그들이 어망을 치는 것이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이 지혜롭고 성실했기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의 외모가 헌칠하였기 때문이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의 무엇을, 그들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셨겠습니까? 답은 요한복음 15,16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총입니다. 흔히 우리들이 은총의 무상성을 이야기 합니다. 은총은 우리 인간의 조건 여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원하심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아무리 초라해도 그 사람을 주님이 택하면 그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첫 제자들이 당시 다른 어부보다 뛰어난 그 무엇을 보시고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이 택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초대와 은총은 무상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지만 그 초대와 은총에 응답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속박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응답은 오로지 인간에게 달려있습니다. 첫 제자들은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두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아브라함과 신앙의 선조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습니다. 복잡해지고 세속화 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렇게 기꺼이 응답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당에 열심히 나오고 많이 나왔다고 해도 응답을 철저히 하지 못하면 신앙은 아직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교회를 참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위해 바치는 응답은 어느 정도입니까? 첫 제자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22). 거듭 말합니다만 주님은 우리를 선택해주시고 불러주셨지만, 그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이만하면 되겠지”라는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주님이 나를 불러주신 처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정성을 다하여 거룩하게 응답하여야 합니다. |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 하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후 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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