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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34 주간 수요일. 2006. 11. 29. 토평동.
묵시 15, 1-4. 루카 21, 12ㄴ-19.
기독교방송에서 이름난 강사인 장경동 목사. 설교를 아주 잘하는 그도 매번 재미있는 것이 아니죠. 설교한 것이 맘에 안 들 때 그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아내를 만나면 먼저 “여보, 나 오늘 설교 죽 쒔어”라고 말한답니다. 그러면 그때 아내가 하는 말, “여보, 죽이 더 맛있어” 그러면 그 말에 장경동 목사는 힘이 난답니다. (장경동,《아주 특별한 행복》중에서)
부부간의 사랑이 깃든 대화이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이 더 맛있다는 대목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칭찬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를 열심히 했어도 그리고 내가 자신이 있어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때가 있고, 나는 잘 못 했는데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주 잘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내 능력 이상이 전해진 것이죠.
중계본동에서 성경강의를 했습니다만, 어느 때는 준비가 부족해서 교우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강의를 하다보면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나면 이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럴 때면, “아닙니다. 제 강의가 아닙니다.” 그저 인사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기에 겸손되이 이렇게 응답하죠. 성령께서 당신의 말씀 안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산다면 내가 모르는 힘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우리는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것은 옳지만, 그러나 그 준비된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해야지 하지만, 삶은 돌발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닥치게 될 박해에 대해서 비장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박해는 엄청난 것이어서 멀리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들(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나를 괴롭힙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박해가 오히려 당신을 증언할 기회임을 알라고 하시죠.
사실 평소에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말하고,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박해의 상황이 되었을 때 어느 누가 순교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교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누가 순교의 영광을 안을 수 있을까 얘기하는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 영광이요 은총이어서 누구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제가 늘 믿음을 이야기하고 확신을 이야기해도 ‘그렇다’라고 확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령께 의탁하면 힘을 주시듯, 박해의 때가 되면 오로지 성령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께서 멀리 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까지도 언급하신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받게 될 심한 상처, 배신감에서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칫 상처가 우리의 믿음을 괴롭히고 믿음을 상실하게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총구역장으로 열심히 봉사를 했으면서도 그리고 믿음이 있었으면서도, 그 어떤 상처 때문에 믿음을 놓치는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을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믿는 공동체에서 고발을 당했고(함께 빵을 떼던 유다가 그럴 줄이야), 당신이 수장으로 뽑았던 베드로에게도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보여주신 것은 여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배반으로 인한 상처가 믿음을 앗아가진 못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믿음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멘. 박해가 오면, 세상은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치지만,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반대라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는다.”(루카 21, 19)
인내. 이것을 예전에는 “참고 견디면”이라고 번역을 했었습니다. 이 뜻은 “아래에 머물다”라는 것이죠. 힘으로 다가오는 자에게 힘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머물 수 있는 믿음의 여유가 있다면 구원을 얻습니다. 더 나아가 그 아래에 머뭄이 주님의 아래에 머무는 것을 의미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아래 머무는 것이기에 그 어떤 것도 이겨낼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아래에 머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아멘. 주님 아래 머무는 이는 그 누구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얻습니다. 내가 준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힘이 있고, 그것으로 승리를 얻습니다. 아멘. |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는다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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