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엇이기에 - 장재봉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51:12

글자

2006.11.30. 목

 

마태오 복음 4장 18-22절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제가 무엇이기에     장재봉 신부
위령 성월 동안 은혜가 크셨겠지요? 죽은 자와 산 자의 하느님이신 그분의 사랑이
온누리에서 찬미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제 소양이 크고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탓인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베드로보다 안드레아의 모습에
마음이 더 끌리는 편입니다. 그분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소개해드리고
(요한 6,9 참조)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그리스인을 데려다주는(요한 12,22 참조) 몫을
살고 싶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끝내는 내가 예수님께 소개해준 그 사람이
베드로처럼 하느님 교회의 반석이 되는 기쁨을 안드레아와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중재해드릴 힘을 가진
가톨릭 신자입니다. 죽은 이를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참 하느님의 말씀으로 목마른
세상에게 우리 예수님을 소개시키는 일도 우리의 몫입니다. 살았으나
죽어 있는(묵시 3,2 참조)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와 사랑을 바치고 아직
모자라는 헌신과 인내를 청하도록 합시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죽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 의무로 주어진 종교는 우리 가톨릭뿐입니다
(타 종교의 천도제와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거룩한 몫을 부여받은 우리는 모두
세상의 대표 ‘레위인’입니다(레위 4장 참조).
 일상의 소금
필자 신부님을 만나고 오는 길에 같은 건물에 계신 다른 신부님 생각이
나서 잠깐 들렀다. 얼마 전부터 저작권이 강화되어 ‘소금항아리’
생활단상글 구성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데, 신부님은 언제든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영성카페에서 필요한 글을 인용해서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분이다.
가끔 인사차 전화를 드리면 “나눌 수 있으면 나눠야죠!” 하는 짧은 말씀과 함께
늘 허허 웃는 따뜻한 웃음으로 긴 여운을 주시는 신부님. 하지만 꼭 한 번
찾아뵙겠다는 전화 인사는 고정 칼럼을 맡아주시는 필자들을 먼저 찾아뵙느라
매번 인사치레에 그쳤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영성카페에서 신부님 글을 볼 수가
없다. 여쭤보니 수도회 사무국 소임에 쫓겨 제일 먼저 글 쓰는 데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단다. “나름대로 감성도 풍부하고 나이 50을 바라보기까지 하느님
체험도 했다고 생각돼서 글도 쓰고 책도 펴내고 싶은 맘이 컸어요.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 좀 하다보면 맡고 있는 일이 더뎌져서 점점 속이 편치 않은 거예요.
회원들 소풍 계획이나 짜고 이것저것 회원 문서관리 같은 거 말고, 나도 다른
형제들처럼 영성적인 책 보면서 공부도 하고 그런 사도직을 하고 싶은 맘
때문이죠.” 그런데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깨닫게 된 게 있단다. 세상에는
내 몫이 있고 아닌 게 있다는 걸, 내 몫이 아닌 걸 자꾸 쫓다보면 평화를
잃는다는 걸, 또 내 몫이 싫다고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건 안 하려
든다는 걸, 이 순리에 순명하니 젊은 시절 그토록 찾아 헤맸던 마음의 평화가
어느새 신부님 안에 와 있더군요.” 신부님의 욕심 없는 맑은 심성이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든다.
이은정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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