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안드레아 [경구봉신부님]

2006. 12. 2. 오전 11:57:05

글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안드레아

-경규봉신부(전주교구)-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사도 안드레아는 갈릴래아 지방의 벳사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씩씩한, 남자다운’이란 뜻을 지닌 그의 이름처럼 그는 남자답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이 침략자들의 압제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선포하였을 때, 혹시 세례자 요한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듣고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며”(요한 1,34)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요한 1,36) 하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곧장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이 곧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다. 그는 예수님 곁을 물러나자마자 형 베드로를 찾아가 메시아이신 주님을 만났다고 전하며,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한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전도생활을 하신 이후였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는 전도생활을 하시면서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던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은 곧장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부터 그들은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스키티아와 그리스 지방에 복음을 전하였고, 그리스 아카이아 지방의 파트라이에서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안드레아 사도는 러시아에도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며, 그리하여 러시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또한 스코틀랜드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도의 유해 가운데 일부가 4세기경에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의 유해를 관리하던 성 레굴루스(Regulus)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그 곳에서 30여 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자는 성 안드레아 사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성 예로니모에 따르면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는데, 357년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으며, 15세기에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는데,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가 그리스 정교회와 화해하는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내어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구약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 마침내 메시아이신 주님을 만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과 함께 살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듣자마자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을 따랐다. 그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일생을 주님께 봉헌했다.

오늘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보내면서 우리도 성인처럼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믿음의 신앙인이 되자.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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