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1월 29일 수요일 ♥눈 감은 영성에서 눈 뜬 영성으로
나는 초자연적 차원과 그 권능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차원만 추구하다 보면 잃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눈은 더 이상 놀란 듯 활짝 열려 있지 않다.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가 있는가?
부서지는 파도 속에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가?
갓 태어난 아기의 해맑은 눈동자 속에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가?
장미 한 송이, 혹은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인물, 아름다운 노래,
계절의 변화 가운데서는?
친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또한 맛있는 음식과 감미로운 대화에서 그분을 맛보지 않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 도처에서 확장되고 있다.
우리의 눈을 열어, 굉장한 사건을 주목하는 만큼 이른바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맛보자.
이제 당신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마이클 프로스트, <일상, 하느님의 신비, 서문>중에서
♣ 체스터톤은 미술 작품에서 그리스도인 성자와 불교도 성자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 가장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불교도 성자는 항상 눈을 감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 성자는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불교도는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으나 그 눈꺼풀이 무거운 듯 지그시 감겨 있다. 중세의 성자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몸매이지만 그 눈은 깜짝 놀란 듯 활짝 열려 있다. 불교도는 내면에 집중하는 독특한 눈빛을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필사적으로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17쪽, 서문) 그리스도인은 창세기에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참 좋다”는 세상 만물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보고, 듣고, 은혜를 맛보자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영혼의 눈을 갖자는 것입니다. --------------------------------------------- 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세요 ! |
[묵상] ♥눈 감은 영성에서 눈 뜬 영성으로...김홍언신부님
2006. 12. 2. 오전 11: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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