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이 저의 전부가 되소서 - 장재봉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27:05

글자

2006.11.29.수

 

 루카 복음 21장 12-19절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주님, 당신이 저의 전부가 되소서      장재봉 신부
오늘 우리 예수님의 말씀은 왠지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특별한 순교자나
빼어난 성인들이 그 대상인 것 같습니다. 철이 없을 적에는 순교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지게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스테파노(제 수호성인이시지요)의 죽음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수수하게(?) 살아가도록
해주심에 골백번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겪게 되는 마음의
핍박에 대하여, 타인의 생각에 무시당하는 나를 위한 말씀이십니다. 물론 나의
생각과 말로 핍박한 이웃, 내 마음 바깥에서 서성이는 이웃을 되돌아보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하나 꼽으라면,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우를 포함시켜보고 싶습니다. 우리 신자 분들,
자손을 얻으시면 유아 세례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이 궁리 저 궁리해서 세례명도
골라줍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기 이름은 소위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가서 짓는다고 하네요. 그뿐입니까? 자녀의 결혼을 성사시킬 즈음엔
궁합인가요? 사주인가요? 아무튼 점쟁이가 골라준 그 날짜에 성당에서 혼배를
치룹니다. 정말 낯 뜨거운 처사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이신 여러분!
“발람에게 속으신 겁니다”(묵시 2,14). 이웃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에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티아티라 신자들은 이제벨이라는 예언자에게 “속아서 불륜을
저지른”(묵시 2,20) 탓에 질타를 당합니다. 속과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유연하게
무조건 내 주장만 내세우면 상대는 문을 닫아버린다. 먼저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은
순서다. “당신 회사, 다른 회사보다 빡빡한 거 알아? 우리가 이번에 장사가 안 돼서
그러니까 시간 여유 좀 달라고 해도 그 며칠을 못 참고 말이야.” “빡빡하다뇨?
물건을 가져가셨으면 제 날짜에 입금해주는 게 도리 아닙니까? 지난번에 왔을 때도
그냥 가라고 하시고 이번에도 그냥 가라시면 어떡합니까?” 상인이 내뱉은 불평에 이렇게
응수할 게 아니라,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그렇죠? 우리 회사가 좀 빡빡해요.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제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오늘도 수금을 못하면 전 또
시말서부터 써야 합니다. 하지만 정 그렇게 사정이 어려우시다는데
어쩌겠어요. 오늘은 제가 그냥 욕 한번 얻어먹고 말죠.” 상대의 반응에 맞장구치며
자기 심정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요령. 즉 처세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이 상인이라면
과연 어느 사원에게 먼저 물건 대금을 지불하고 싶겠는가? 물론 큰 원칙은 지켜야
하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때론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유연하고 친화적인
매너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남들과 사귀면서 살아가는’처세술인
것이다. 처세는 비단 상거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생활은 물론,
부모 자식 관계, 부부 사이, 친구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누군가 나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했을 때 무조건 불쾌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수긍이 안 되더라도 반론을
제기한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여유를 갖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얘기를 풀어가야 성공률이 높아진다.

이만중 | 고즈윈 | <경영, 사람을 향해 진보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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