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돌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15:30

글자

나해 연중 제 34 주간 화요일.

2006. 11. 28.

토평동.


묵시 14, 14-19.

루카 21, 5-11.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반합니다. 실제로 랍비 문헌을 보면 헤로데가 지은 이 성전이 당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웅장한 건물의 돌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성전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폐허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합니다. 그 이후로 유다인들은 성전을 짓지 않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의 폐허를 예고하시면서 그 누군가가 혹시 나의 이름을 걸고 때가 왔다고 하면서 선동하더라도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젤롯 당원을 중심으로 성전 파괴를 외치며 선동하는 무리가 나타나고 그로인해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 나타나고, 그 무엇이 선동한다 하더라도 동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평화 속에 내가 행할 믿음의 삶을 살면 되고 그 믿음은 곧 구원을 가져올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외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구원의 삶으로 바꾸어 줍니다.


이후 폐허가 된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있어 상징성이 대단한 것입니다. 철저히 성전 중심의 종교인 유다교는 오로지 예루살렘에만 성전이 존재했고, 다른 곳에서는 회당을 중심으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가장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에, 성전이 폐허가 되었을 때 그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호기로 바꾸어 주시는 주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삶이 바뀌게 만들어 주시죠. 철저히 성전 중심이던 유다인들은 성전 파괴 이후 작은 성전을 부르짖습니다. 즉 가정이 성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매일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립니다. 음식을 먹던 식탁이 제단이 되어 이 식탁에서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가 전례를 거행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성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삶이 자라기 위해서는 가정교회 즉 작은 성전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죠. 가장 작은 교회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교회인 가정에서 먼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참으로 뿌리가 깊은 나무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외적인 돌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것은 그저 눈을 즐겁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돌은 내 신앙의 반석으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지었기에 어떤 비바람에도 굳건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내적인 성전을 바라고 계시고, 그 성전에 거처하십니다. 주님을 모신 성령의 궁전은 결코 허물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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