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사랑의 방식[김현영신부님]

2006. 12. 2. 오전 11:04:40

글자

사랑의 방식


  사랑하는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오늘의 성경 말씀은, 어느 빈곤한 과부가 헌금함에 비록 다른 가진 자들의 눈에는 하찮은 금액이지만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넣어 예수님의 칭찬을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는 아주 어리석게 여길 수 있고 또한 화가 날 수도 있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과부에다가 가난하다 못해 겨우 수천원이 전 재산인 여인이 신앙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과 아이들이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것은 현대인 특히 종교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좋은 비난꺼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의 내용들이 그 당시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함축적으로 많은 교훈꺼리를 제공하고 있고, 다양한 묵상의 주제가 되고 있기에 오늘 우리는 이 과부의 헌금 얘기를 통해 사랑에 대해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7-80년대 우리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거나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식이었고, 21세기의 출발점인 현대에는 ‘열정’ ‘죽을만큼’ 등으로 자기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랑의 방식에 정답이 있을까요?


  오늘 성경 말씀에서 출발하여 그 정답에 다가가도록 해 봅시다.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헌금이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여지리라 희망하였고 믿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자신에게도 필요하지만 더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봅니다. 물질에 대한 맹신과 욕심 그것을 얻기 위한 숱한 죄악과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네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의 삶을 통한 체험은 다른 이웃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 그들과 공유하고자하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해였습니다.
  세 번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불행과 이웃들의 무관심에 대한 용서였습니다. 유독 자신에게만 연이어 닥쳐온 불행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한 용서, 또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숱한 몰이해와 손가락질, 그리고 함께 남겨진 자식들과의 쉽지 않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웃들의 무관심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이웃 모두를 용서함으로써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방식은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오늘 우리는 Believing(믿음), Understanding(이해), 그리고 Forgiving(용서)의 세가지로 정립하였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먼저 신뢰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행동에 대해 용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용서할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고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그저 오늘 한 번, 손 잡아주고, 미소지어 주며, 따뜻하게 안아주십시오. 사랑의 실천은, 나의 눈길을 원하는 이를 보아주고, 손길을 원하는 이의 손을 잡아주고, 따스한 말 한마디를 원하는 이를 불러주고, 가슴을 원하는 이에게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또 완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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