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보고 계셨다 - 이회진 신부님

2006. 12. 2. 오전 10:55:17

글자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기의 성능도 매우 좋아져서 사진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공부해도
보통 사람들도 전문가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풍경 사진을 찍는 데 열성인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다 보면
저로서는 재미난 현상을 하나 발견하곤 합니다.
그것은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여러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저는 흔히 두 부류로 나누어 구분해 봅니다.

한 부류는 사진 촬영을 하려다가 촬영 대상과 사진기 사이에
어떤 물건이나 대상이 있으면 치워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 방해물이 나뭇가지이거나 작은 나무이라면 부러뜨리거나 잘라 버리고,
잡목이거나 어지럽게 난 풀밭이라면 발로 다 찢이기며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서
사진 촬영을 합니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빨리 이동합니다.
얼른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좋은 구도를 잡아 원하는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이 찍고 싶은 대상과 사진기 사이에 장애물이 있으면
옆으로 돌아가며 다른 각도를 잡아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러다 좋은 구도가 나오지 않으면 사진 촬영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아주 천천히 이동합니다.
마음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담기 위해서 대상을 오래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과 함께 헌금함에 예물을 넣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 앞에 앉아 계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헌금함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눈에 어떤 이는 부자로 보였을 것이고,
어떤 이는 가난한 이로 보였을 것이고,
어떤 이는 풍족한 이로, 어떤 이는 평범한 일꾼으로, 어떤 이는 과부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사람들의 옷 모양새, 얼굴 모양새 또는 헌금함에 넣는 동전의 빛깔(금색, 은색, 동색 같은)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그들의 옷 모양새, 얼굴 모양새, 헌금하는 모양새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칭찬하는 말씀에는 얼굴이 예뻤다던가, 옷 빛깔이 좋았다던가
혹은 헌금을 많이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닌 (과부는) “다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과부의 주머니 사정을 보았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집안 사정을 보았다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과부의 전부,
다시 말해 “사람의 존재 전부”를 보셨다는 말일 것입니다.
옷이나 얼굴이나 헌금이 아닌 그 사람이 지닌 “인격 전체”를 보았다는 것이죠.

신앙이 어떤 사물이나 외적 모습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 사물이나 모습이라는 대상(對象)에 집착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혹은 좋아하는 것만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찍고자 하는 사진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중간의 장애물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풀밭도 아닌 방해물이 될 뿐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될 뿐이죠.
그러기에 부러뜨려도 찢이겨 뭉개버려도 오히려 필요한 일을 한 것이라서 기쁠 뿐입니다.

신앙이 우리의 인격 전체에 달려 있는 것처럼
신앙을 사는 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헬렌켈러가 말하듯 진정 소중한 것은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만져지는 것도 아니라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들의 삶의 작은 사건들마저 주의 깊게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과부가 가져온 마음을 섬세하게 가슴으로 느끼며 기뻐하십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래 머물며 사물과 자신이 하나 되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을 보는 것은 저만의 느낌은 아니겠죠?

왜냐하면 제가 알기에 예수님도 분명 이 순간에
우리 인생의 섬세한 순간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계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내 호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든, 지갑에서 무엇을 꺼내든,
아니면 마음이나 영혼에서 무엇을 꺼내든
보여지는 것, 만져지는 것이 아닌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꺼낼 수 있다면
하느님 역시 그것을 느끼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저를 가만히 바라보시듯 저 역시 당신 앞에 가만히 나와 앉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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