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루카 21,1-4 ▒ 11월 27일 복음말씀에서 ◈

┗▶『해설과 묵상』
오늘 과부의 헌금이 어떤 헌금보다
큰 헌금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금이나 헌물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치는 사람의 마음자세이다.
헌금의 액수에 관계없이 헌금에는
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마음은 제각기 다르다.
헌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있으니,
달갑지 않고 억지로 내는 마음,
자기의 위신이나 남의 이목 때문에 내는 마음,
넉넉하면서도 인색한 마음,
자기를 선전하고 광고하려는 마음,
마음조차 담지 않고 그냥 내는 마음 등이 그런 것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헌금이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친다면 정성껏 바쳐야 하고,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바쳐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차마 바칠 수 없기에
우리는 생명을 대신할만한 것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자신의 생명을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가난하게 되셨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더욱 가난하게 되셨으며,
죽으심으로써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사랑이
그분 안에서 밝히 드러났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이토록 크신 사랑이 드러났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부자들의 "가벼운" 헌금보다는
과부의 "온전한" 헌금 속에 그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박상대 신부』
오늘 과부의 헌금이 어떤 헌금보다
큰 헌금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금이나 헌물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치는 사람의 마음자세이다.
헌금의 액수에 관계없이 헌금에는
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마음은 제각기 다르다.
헌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있으니,
달갑지 않고 억지로 내는 마음,
자기의 위신이나 남의 이목 때문에 내는 마음,
넉넉하면서도 인색한 마음,
자기를 선전하고 광고하려는 마음,
마음조차 담지 않고 그냥 내는 마음 등이 그런 것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헌금이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친다면 정성껏 바쳐야 하고,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바쳐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차마 바칠 수 없기에
우리는 생명을 대신할만한 것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자신의 생명을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가난하게 되셨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더욱 가난하게 되셨으며,
죽으심으로써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사랑이
그분 안에서 밝히 드러났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이토록 크신 사랑이 드러났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부자들의 "가벼운" 헌금보다는
과부의 "온전한" 헌금 속에 그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박상대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