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벽 을 여 는 5 분 피 정... 박 유 진 신 부 님 *

2006. 12. 2. 오전 10:49:02

글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루카 21,1-4 ▒ 11월 27일 복음말씀에서 ◈ 



 


 
┗▶『해설과 묵상』

오늘 과부의 헌금이 어떤 헌금보다
큰 헌금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금이나 헌물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치는 사람의 마음자세이다.
헌금의 액수에 관계없이 헌금에는
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마음은 제각기 다르다.
헌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있으니,
달갑지 않고 억지로 내는 마음,
자기의 위신이나 남의 이목 때문에 내는 마음,
넉넉하면서도 인색한 마음,
자기를 선전하고 광고하려는 마음,
마음조차 담지 않고 그냥 내는 마음 등이 그런 것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헌금이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친다면 정성껏 바쳐야 하고,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바쳐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차마 바칠 수 없기에
우리는 생명을 대신할만한 것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자신의 생명을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가난하게 되셨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더욱 가난하게 되셨으며,
죽으심으로써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사랑이
그분 안에서 밝히 드러났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이토록 크신 사랑이 드러났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부자들의 "가벼운" 헌금보다는
과부의 "온전한" 헌금 속에 그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박상대 신부』



 

 

▒┃존재, 그 쓸쓸한 자리 / 이해인┃▒

언젠가 한번은 매미처럼 앵앵 대다가
우리도 기약없는 여행길 떠나갈 것을
언젠가 한번은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쨍하고 해뜰날 기다리며 살아왔거늘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풀잎에 반짝이고
서러운 것은 서러운대로 댓잎에 서걱인다.

어제 나와 악수한 바람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산다는 것의 쓸쓸함에 대하여
누구 하나 내 고독의 술잔에
눈물 한방울 채워주지 않거늘

텅 빈 술병 하나씩 들고
허수아비가 되어
가을들판에 우리 서있나니

인생, 그 쓸쓸함에
바라볼수록 예쁜 꽃처럼
고개를 내밀고 그대는 나를 보는데

인생, 그 무상함에 대하여
달빛이 산천을 휘감고도 남은 은빛 줄로
내 목을 칭칭감고 있는데
내 살아가는 동안
매일 아침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늘
그래도 외로운거야 욕심이겠지
그런 외로움도,
그런 쓸쓸함도 없다는 건
내 욕심이겠지...

 



┗▶『묵상기도』

주님, 당신은
기묘하십니다.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과 한바탕
설전을 거치는 싸움을 지켜봤습니다.
사두가이의 입을 막아버리고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경계하라고
거침없는 속내를 보이신 다음의
뒷풀이가 필요한 그 마음을
저는 졸이며 지켜보는 관객입니다.

사람들은-배웠다는 성서학자들 까지도-
종교지도자들과의 한바탕 격론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당신을 전하며
당신 편에 선 자로서 짐짓 으쓱해 합니다.
“역시 나의 주님이야~” 이런 식이죠.

하지만 주님,
당신의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당신은 승리의 성취감을 누릴
기분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성전을 나와 성전마당에 서신
그 심정에 머물러 봅니다.

메인 가슴과 虛한 심정은 마치
갖다 붙인 시인의 시 제목처럼
‘존재, 그 쓸쓸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헌데 당신은 참으로
기묘하십니다.
사람은 보통 마음이 허하고 존재가 쓸쓸한 때
하늘이나 먼 산을 한 번보고 슬픈 눈으로
잠시 머물며 심호흡을 하는 법인데
당신은 성전마당의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그것도 제법 의로운 종교인이라면
짐짓 의식적으로도 못 본채 고개를 돌려주는
품위 있는 정서를 마다하시고
헌금궤에 누가 돈을 어떻게 넣는지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십니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늘 그러셨습니다.
당신이 아프고 힘들다는 이유로
인간의 현실을 향한 시선을
한 번도 떼신 적이 없으십니다.
꿰뚫어 보시고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봉헌하는 헌금을
위탁받고 관리하는 사제이옵니다.
하오니 저도 당신의 마음과 눈을 닮도록
늘 기도하게 하소서.
봉헌자의 삶을 깊은 눈으로 보게 하시고
가난한 과부의 목숨 같은 헌금이
한 푼 당신의 뜻에 어긋남이 없게 하소서.

비장하게 다다른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황폐함을 거친 바람으로 맞으며
당신이 짊어진 첫 십자가,
존재의 쓸쓸함으로 아파하신
당신을 위로하는 기도를 위해서도
오늘 저의 묵상은
힘들 때 하늘을 보기 전
사람을 당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옵나이다.
힘들수록 사람을 똑바로 보신
당신처럼.

아멘.

『Squ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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