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봉헌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0:56:54

글자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봉헌

 

제 1독서 : 묵시 14,1-3.4ㄴ-5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복    음 : 루카 21,1-4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부자들이 와서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헌금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칭찬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21,3-4)
   가진 것을 모두 바친다는 것은 정성과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봉헌이 그것이시지요.
   그 당시 과부가 넣은 렙톤 두 닢의 가치는 노동자 하루 품삯의 1/72에 해당되는 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 노동자의 일당이 5만원이라면 약 700원 정도에 해당되는 액수였던 것이지요. 별 것 아닌 작은 금액일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나 당장 살아가기에도 벅찬 과부에게는 렙톤 한 닢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과부는 정성을 다해서 봉헌했고, 하느님께서는 그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성당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또 나라에서도 기초 생활자에게 한 달에 얼마씩 구청을 통해 지원을 해 주고 있지요. 그런데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고, 남한테 도움을 받는 제가 무슨 돈으로 교무금을 냅니까? 이 처지에 제가 어떻게 남을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또 그런 처지에서도 놀랄 만한 금액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보다도 배려와 나눔이 필요한 처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정성을 모으고 이웃과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그에게 찾아온 축복이 지속됨을 사목자로서 자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눌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콩 반쪽도 나누어 먹는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마음만 있으면 나눌 것은 얼마든지 있지요.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가난한 과부와 같은 불우한 이웃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이혼한 가정도 많고 여러 가지 이유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지하철역에 노숙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가족들이 어머니의 생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정성이 깃든 나눔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복음서 중에서도 특히 루카 복음서에는 약자들의 대표격인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시 구세주를 기다리던 과부 ‘한나’이야기가 2장에 나오고, 심한 기근에서 구원받은 사렙타 마을의 과부 이야기가 4장에 나옵니다. 또 7장에는 한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주시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사회적인 경멸 속에서도 재판관을 찾아가 집요하게 공정한 재판을 요구했던 한 과부의 이야기가 18장에 나오는가 하면 오늘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루카 복음서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이 여러번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들 사건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히브리 말로 ‘과부’라는 단어는 ‘냉가슴 앓는 벙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경멸의 뜻도 담겨 있지만 과부가 사회적인 약자이고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는 우선적으로 가난하고 억눌린 약자를 보호하시며 그들의 정성에 축복을 내리신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헌금에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지요.
   그런데 정성을 담는 마음은 비단 하느님께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입니다. ‘마음을 담은 선물’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목자로 있으면 신자들의 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서품을 받고 처음 부임한 잠실 성당에서 보좌신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인사를 마치고 막 떠나려고 하는데 저의 차 창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무엇인가를 담은 까만 비닐 봉투를 차안으로 넣어주며 “신부님, 잘 가세요!”하고 연신 인사를 하셨습니다. 무심코 받은 봉투는 뜨거웠는데 신자들 사이에 묻혀서 정신 없이 떠나오고 또 새 부임지에 도착해서는 그 곳 신자들과 또 다른 분위기에서 첫 만남을 가지면서 그 선물을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며칠 지나서 열어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만두였고 시간이 지난 터라 이미 상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만두 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성당을 떠나는 저에게 뜨끈뜨끈한 만두를 먹게 해 주려고 막 쪄낸 만두를 가지고 뛰어오셨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 때 그 자리에서 먹었더라면 기억에 그렇게 깊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뒤에 상한 만두를 열어보고 느낀 감사함과 죄송함이 지금도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 입니다.
   정성과 마음을 담은 선물은 이렇게 큰 감동을 줍니다. 사람도 이럴지언정 하느님께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하느님께, 또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것, 귀하게 여기는 것을 봉헌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자칫 선물을 하고도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정성이 담기지 않은 성의 없는 선물은 불순함을 유발하고 불쾌함을 줄 뿐입니다. 더더군다나 헌금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에서 우리는 초라하지만 정성을 다한 헌금을 하느님께서 아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는, 특히 루카 복음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담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다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나누려고 하기보다는 나눔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을 모시는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대로 하느님과 사람에게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그리고 나보다도 어려운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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