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해 연중 제 34 주간 월요일. 2006. 11. 27. 토평동. 묵시 14, 1-3.4ㄴ-5. 루카 21, 1-4.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시는데, 오늘은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성전 파괴 예고 이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마르코복음사가가 전해주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향한 헌신에 대한 가르침은 상통합니다. 성전에 13개의 헌금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이 그 헌금하는 것을 보면서 궤에 넣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 예수께서 앉아 보십니다. 사제들과 예수님 똑같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지만, 관점은 다릅니다. 한 쪽은 그것이 성전 예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지만, 한 쪽은 하느님께 얼마나 헌신하는 마음인가를 보십니다. 그렇기에 성전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제의 눈에는 부자의 헌금이 흐뭇하지만, 예수님께는 온 마음으로 전부를 털어 넣은 과부의 헌금이 흐뭇합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다”(루카 21, 4) 풍족하다는 것은 잉여입니다. 가진 것 중에서 얼마를 넣은 것입니다. 당시 부자들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온갖 혜택을 받으며 중심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 그들은 그것을 누리면서도 하느님께는 인색합니다.(루카는 비록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진 데서 남는 어떤 몫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소외받는 계층의 대표인 과부는 가진 것을 모두 넣습니다. 렙톤 두 닢.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통용되는 화폐 중 가장 금액이 적은 것입니다. 오늘의 돈으로 한 렙톤이 약 700원. 두 렙톤을 넣었으니까 1400원을 낸 것이죠. 그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냈습니다. 이 ‘궁핍하다’(휘스테레마토스- 이것은 마르코 복음에서의 휘스테레세오스보다 구체적인 표현이다)라는 단어는 ‘그녀에게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부자들은 오직 남은 것들만을 헌금했지만, 이 과부는 심지어 없는 것마저 냈다는 것이죠. 이 표현은 좀더 강력한 표현으로 가진 전부를 탈탈 털어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가장 큰 계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온 마음으로 주 하느님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온 마음이 무엇인지 가난한 과부가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과부를 보시면서 당신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털어내어 주신 모습을 이 과부가 보이는구나. 이 과부가 내가 가르친 것을 알아듣는 삶을 살고 있구나.’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후 곧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고로 어떤 삶이 진정 주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하느님께 좀더 진지한 모습이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자신들이 받은 것이 많은 만큼 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 또한 더 큰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과연 이들이 과부의 열정적인 헌신을 본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과부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 마음을 가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헌금을 하면서 우리도 그 열정을 가지고, 주 하느님께 전적인 헌신의 마음으로 바치고 있을까요?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관문처럼 하지는 않는지. 마치도 하느님께 적선하듯이 하는 것은 아닌지. 해야 한다니까 들어가는 문 앞에서 티켓 하나 끊는 것은 아닌지. 사목자들 또한 그 마음이 아니라 액수에 눈이 먼 것은 아닌지. 가진 것을 다 털어 넣은 과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어떤지. 빚을 내서라도 애를 위해서는 쓴다는 나의 모습에 비추어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지. |
나해 연중 제 34 주간 월요일.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 오전 10:56:08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