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나이다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1:29:31

글자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나이다

 

제 1독서 : 묵시 15,1-4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복    음 : 루카 21,12-19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다니면서 하느님께 축복과 평화를 바라며 신앙 생활을 합니다. 축복을 바라고 평화를 간구하며 환난과 재난이 생기지 않기를 원하지만 신앙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삶의 여정에 환난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똑같은 삶을 살고 똑같은 어려움에 처해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평온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느님 때문에 더 큰 환난을 겪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 때 평범하게 살다가 하느님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써 혹독한 시련을 겪고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도 신앙을 이유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있지요. 바로 우리와 맞닿아 있는 북한에서, 또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드러나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들로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21,12-15)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대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갇히고 죽는 박해와 시련에 맞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계속 드러나고 있음을 우리는 지나온 시간 속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선포되자 바로 박해가 시작이 됩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스테파노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평화를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스테파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증거로 박해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이 스테파노의 죽음이 오히려 복음이 점점 더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예루살렘에서만이 아니고 로마, 아프리카,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등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어디에서나 일어났습니다. 또한 이 일들은 과거의 일들만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도 하느님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세를 받음으로써 부딪히는 일들도 있고, 신앙이 다른 곳으로 시집 장가를 가서 마음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하고 개종을 강요받는 일들이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신앙이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는 집도 많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21,14-15)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평화와 축복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어려움도 겪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 허공을 울리는 빈 말이 아니라 사실임을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들을 통하여 체험하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어려움을 승화시킬 때 그 시련보다도 더 큰 은총의 결실이 맺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감히 생각지도 못한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시며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교회법으로 신자와의 결혼을 원칙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예외적인 일로 반드시 ‘관면혼배’를 하게 되어 있지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으로, 또 신앙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 밖에서 방황하며 고생하는 시련의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세속적인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빨리 접고,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부모로서의 사랑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참고 견디고 기도하면서 시련의 시기가 성숙의 시기를 거쳐 축복이라는 결실로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어려움이 없는 축복만을 바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또 그런 우리의 현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21,17-18)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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