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중34주일·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다음주는 대림1주일로 또다시 새로운 한해가 주어집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제2독서의 요한 묵시록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즉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알파와 오메가’는 바로 과거와 현재와 또 미래가 다 포함되어 있고, 이를 주관하시는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왕’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인 것이고 따라서 이 날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내는 것입니다.
왕의 대축일을 맞이하여 ‘눈먼 임금님과 눈물’이라는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 한 임금님이 계셨는데 연세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시력이 약해지더니 점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걱정했고 나라의 유명한 의원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했으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의원들이 손을 놓고 포기할 즈음해서 어느 날 한 노인이 대궐 앞에 찾아 와 임금님의 눈을 진찰하겠노라고 청했습니다. 처음엔 거절당했으나 끈질긴 청원이 받아들여져 결국 임금님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임금님의 얼굴과 눈을 유심히 살펴 본 후 어떤 진맥이나 약 처방도 없이 이렇게 한 마디 말을 했습니다. “눈물을 흘려야 낫습니다.” 그리고는 그 노인은 떠나갔습니다. 임금님과 신하들은 괘씸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 노인의 진지한 표정과 근엄한 말에 압도되어 떠나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밑져야 본전이니 눈물을 흘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생각해 보니 근래에 눈물 흘린 기억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극배우들과 이야기꾼들을 불러 슬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에 조금도 슬픔을 느낄 수 없었고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세상에! 내가 이렇게도 무뎌져 있단 말인가! 내가 이리도 슬픔을 느낄 수 없고, 눈물을 흘릴 수 없단 말인가!” 자신의 돌같이 굳은 마음, 얼음 같이 차가운 감정, 남의 슬픔에 대해 그렇듯 무관심하고 무반응 하는 자신의 비인간성과 무자비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슬퍼졌습니다. 이때 한 방울의 눈물이 눈에서 흘러 내렸고 이어서 몇 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임금의 눈이 빛이 보이면서 뭔가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면서 조금 더 낫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남의 슬픈 이야기 들으면 눈물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은 슬픈 사람, 고통스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의 모습 보고 함께 마음 아파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왕은 정상적인 눈으로 회복되어 잘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부터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전까지는 마음으로 상대를 어여삐 여기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며,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자신의 무관심, 무반응, 비인간성과 무디어진 마음을 보고서야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 그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백성을 볼 수 있었기에 육신의 눈도 함께 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몸소 인간의 몸으로 강생하셨고, 또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것도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우리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에 군림하시는 왕이 아니라 참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삶을 사신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 덕분에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게 된 것과 또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참되고 진정한 왕이라면 우리는 또한 참되고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주님을 섬기는 내가 얼마나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반성하는 기회가 오늘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이해서 참된 왕이신 예수님을 본받는 그러한 제자, 신하의 모습으로 살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을 때 그분께서는 더욱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