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제 1독서 : 묵시 11,4-12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들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교회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에 근거하며 신자들은 이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또 그렇게 믿으며 살았을까요? 우선 사두가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우리는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들은 유다교의 대제사장과 고위 성직 계층의 직책을 독점하는 상류 지배층, 귀족층 그룹으로,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며 영적인 존재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직위와 재산을 독점한 기득권자들이고 이를 유지, 확장하기 위해서 친로마적이며 반민족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수락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했지요.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외세와 결탁하여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어도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지극히 현세적인 삶만이 모두인 양 살면서, 현재에서 잘 사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기에 하느님의 심판도 믿지 않았으며 현세에서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신앙, 하느님의 심판은 아무 의미가 없었으며, 당연히 그것을 부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마카베오기 하권은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믿음과 희망을 지킨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일곱 아들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미래의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부활에 대한 분명한 선언을 한 넷째 아들은 자신과 자신을 죽이는 왕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부활에 대한 인식에 있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마카베오가 전하는 한 가족의 삶은 부활을 믿는 자들의 삶이고,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의 삶은 부활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믿음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분명히 입으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행동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처럼 현실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11월 위령 성월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근본적인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을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59:45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