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59:45

글자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제 1독서 : 묵시 11,4-12 (그 두 예언자는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습니다.)
복    음 : 루카20,27-40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십니까? ‘부활’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예쁘고 깨끗한 모습으로 태어나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평화롭게 동동 떠다니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우리의 실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제 모습은 죽기 전의 마지막 모습으로, 허리는 굽어서 지팡이를 짚고 머리는 호호백발에 이는 전부 빠진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부활하라면 아마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담이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들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교회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에 근거하며 신자들은 이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부활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삶이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비웃으며 성경을 근거로 부활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 중 신명기 25장의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께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25,5-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루카20,35)라고 말씀하시며 육신 부활의 좋은 증거로 하느님께서 선조들과 맺으신 계약을 제시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또 그렇게 믿으며 살았을까요? 우선 사두가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우리는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들은 유다교의 대제사장과 고위 성직 계층의 직책을 독점하는 상류 지배층, 귀족층 그룹으로,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며 영적인 존재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직위와 재산을 독점한 기득권자들이고 이를 유지, 확장하기 위해서 친로마적이며 반민족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수락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했지요.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외세와 결탁하여 절대 다수의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어도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지극히 현세적인 삶만이 모두인 양 살면서, 현재에서 잘 사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기에 하느님의 심판도 믿지 않았으며 현세에서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신앙, 하느님의 심판은 아무 의미가 없었으며, 당연히 그것을 부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마카베오기 하권은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믿음과 희망을 지킨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일곱 아들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미래의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부활에 대한 분명한 선언을 한 넷째 아들은 자신과 자신을 죽이는 왕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부활에 대한 인식에 있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이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7,14)
   하느님을 믿으며 죽어가는 이들의 부활 신앙은 인간적인 아쉬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온갖 불가능을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활 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이기며, 모든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주었습니다.

   마카베오가 전하는 한 가족의 삶은 부활을 믿는 자들의 삶이고,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의 삶은 부활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믿음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분명히 입으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행동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처럼 현실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며 권력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은 분명 부활을 믿는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지요.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현세를 살면서도 영원한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11월 위령 성월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근본적인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을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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