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윤명기신부님]

2006. 12. 2. 오전 12:05:05

글자
연중 제33주일 월요일 - 윤명기 신부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하느님을 만난 체험을 한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평범하고 별 시련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서 어느날 갑자기 하느님이란 존재를 알고나서 변화하게 된 경우들, 혹은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을 때나 현세적인 가치들을 포기해버리고 인간 본연의 빈 마음으로 돌아왔을 때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순간을 체험하게 되는 경우들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감동적인 이야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옛 국경선 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도시 예리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던 예리고의 거리를 구걸하던 한 소경. 아마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것으로 끼니를 채워야만 했고, 자신의 죄의 결과로 소경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멸시당하고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가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좌절,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는 삶 자체가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함께 병자를 낫게 하시고 죽은이를 살리시며 어린이와 죄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신다는 그분의 소문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 소경에게도 들려왔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고통과 체념에 빠져있던 그는 나자렛 예수님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아마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위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고 말겠다는 그의 절박함과 비장함은 주위 사람들의 어떠한 말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이런 애원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소경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이 기적이야기는 단순히 어떤 권능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표지로서, 어째서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빛을 필요로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소경이 다시 찾은 시력은 우리 모두가 항상 새롭게 예수님께 청해야 하는 신앙의 빛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빛을 잃어버립니다. 그 빛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 빛을 청해야 합니다. 이 소경은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분이 약속된 구세주이심을 많은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큰 소리로 고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도 그 분의 참된 본성을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이 소경은 영적인 통찰력으로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그의 간청과 믿음으로 그는 빛이신 분을 만났고 빛을 얻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뜬 것뿐 아니라 영혼의 눈,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나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부를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소경처럼 그렇게 절박하게 예수님을 만날 필요를 느끼고 있는지, 이 소경처럼 그분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비장함이, 모든 인간적인 체면과 이목과 위신까지도 포기하며 그분께 필사적으로 매달릴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들은 수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위로부터 오는 더 높은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이러한 인간적인 체면과 위신, 사람들의 이목까지도 과감히 견딜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소중한 은총의 기회를 종종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진정 빛을 원하고 영혼의 눈을 뜨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자아를 없애는 참된 겸손의 상태에 이른다면 우리는 빛을 발견할 것이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진정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진정 하느님을 갈망합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사랑하기를 진정 원합니까? 진정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예리고의 소경처럼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데 까지 우리가 내려가서 그 빈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부른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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