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말씀의 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복음이라고 하면 평화와 사랑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당연히 평화와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평안해지고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와 사랑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음을 통한 평화의 복이란 복음의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아픔은 무시하고 복음의 결과만을 두고 한 말인 것입니다. 이는 농부가 봄에 땀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씨를 뿌렸던 과정은 무시하고 오직 추수 때 알곡의 기쁨만을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34)
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생각지 말라
사람들의 세상에사에는 평화와 분쟁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쟁보다는 평화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평화가 아닌 칼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과연 평화가 아닌 분쟁이란 말입니까? 이 말씀에 앞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적대하게 만든 사탄의 권세를 무찌르고 인간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둠의 세력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시고는 우리 인간에게 참 평화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참 평화는 전쟁에서 이겨야만 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쟁을 하러 오신 것입니다.
지난날 정부에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 조폭집단과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만을 제안한다면 과연 이 땅에 폭력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물론 세상의 대화와 타협으로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그렇지 않는 악질적 속성을 지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될 그런 불가피한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내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
오늘복음에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땅에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의 내용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말씀합니다.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순다. 똑똑히 들어라." 또한 히브리서 4,12에도 말씀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쪼개고 잘라내는 수술하는 살아있는 수술 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 앞에 우리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들이 의롭게 소생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즉 미사나 기도시간에 우리의 심령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새로운 조성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에 나와서 좋은 말씀 한 구절을 듣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거나, 일단 교회 문밖을 나가고 가면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칼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재창조의 원리
제철공장에 가면 용광로에서 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불물 위에 다시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그 불물은 엄청난 강도를 지닌 강철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죄에 찌들고 병든 인간의 이기심과 야욕을 녹여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하느님의 피조물로 재창조해 내는 불구덩이(용광로)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비유하면, 하느님은 마치 숙련된 조각가가 크고 단단한 바위덩어리를 수십만번 쪼개고 다듬어 자기가 원하는 조작작품으로 만들어 내듯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쪼개고 다듬어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쪼개고 다듬는 책무에 소홀합니다. 특히 신앙에 관련한 믿음, 마음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히 하고 쉽고 편하게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믿습니다"라고만 하면 당장에 하늘이 갈라지고 복이 쏟아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얻어맞을 때는 얻어맞고 회개할 때는 회개하는 것이 복 받을 자가 되면 복을 받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형상이 되기까지는 수천, 수만 번을 끊임없이 말씀의 칼으로 얻어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2장 34-35절에는 시므온이 갓난 예수를 품에 안고 예언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 때문에 넘어질 자들이 누구이고, 일으킬 자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즉 여기에서 넘어질 자, 즉 패할 자들은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으킬 자, 즉 흥하는 자들이란 비록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죄의 드러남을 받고 회개한 겸손한 마음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질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버릴 권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지 좀처럼 버릴 줄을 모릅니다. 내 뜻과 고집만 주장하지 하느님의 큰 뜻을 받을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마다 예수님의 말씀의 칼 앞에 겸손히 엎드려 과연 내 마음가운데 하느님의 큰 뜻을 반역하고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그것을 끄집어 내어 회개하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두올묵상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복음이라고 하면 평화와 사랑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당연히 평화와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평안해지고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와 사랑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음을 통한 평화의 복이란 복음의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아픔은 무시하고 복음의 결과만을 두고 한 말인 것입니다. 이는 농부가 봄에 땀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씨를 뿌렸던 과정은 무시하고 오직 추수 때 알곡의 기쁨만을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34)
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생각지 말라
사람들의 세상에사에는 평화와 분쟁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쟁보다는 평화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평화가 아닌 칼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과연 평화가 아닌 분쟁이란 말입니까? 이 말씀에 앞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적대하게 만든 사탄의 권세를 무찌르고 인간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둠의 세력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시고는 우리 인간에게 참 평화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참 평화는 전쟁에서 이겨야만 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쟁을 하러 오신 것입니다.
지난날 정부에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 조폭집단과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만을 제안한다면 과연 이 땅에 폭력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물론 세상의 대화와 타협으로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그렇지 않는 악질적 속성을 지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될 그런 불가피한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내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
오늘복음에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땅에 우리가 치러야 할 전쟁의 내용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말씀합니다.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순다. 똑똑히 들어라." 또한 히브리서 4,12에도 말씀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쪼개고 잘라내는 수술하는 살아있는 수술 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 앞에 우리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들이 의롭게 소생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즉 미사나 기도시간에 우리의 심령은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새로운 조성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에 나와서 좋은 말씀 한 구절을 듣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거나, 일단 교회 문밖을 나가고 가면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의 칼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재창조의 원리
제철공장에 가면 용광로에서 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불물 위에 다시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 그 불물은 엄청난 강도를 지닌 강철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죄에 찌들고 병든 인간의 이기심과 야욕을 녹여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하느님의 피조물로 재창조해 내는 불구덩이(용광로)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비유하면, 하느님은 마치 숙련된 조각가가 크고 단단한 바위덩어리를 수십만번 쪼개고 다듬어 자기가 원하는 조작작품으로 만들어 내듯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쪼개고 다듬어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쪼개고 다듬는 책무에 소홀합니다. 특히 신앙에 관련한 믿음, 마음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히 하고 쉽고 편하게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믿습니다"라고만 하면 당장에 하늘이 갈라지고 복이 쏟아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얻어맞을 때는 얻어맞고 회개할 때는 회개하는 것이 복 받을 자가 되면 복을 받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형상이 되기까지는 수천, 수만 번을 끊임없이 말씀의 칼으로 얻어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2장 34-35절에는 시므온이 갓난 예수를 품에 안고 예언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 때문에 넘어질 자들이 누구이고, 일으킬 자들은 누구란 말입니까? 즉 여기에서 넘어질 자, 즉 패할 자들은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으킬 자, 즉 흥하는 자들이란 비록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죄의 드러남을 받고 회개한 겸손한 마음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질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버릴 권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지 좀처럼 버릴 줄을 모릅니다. 내 뜻과 고집만 주장하지 하느님의 큰 뜻을 받을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마다 예수님의 말씀의 칼 앞에 겸손히 엎드려 과연 내 마음가운데 하느님의 큰 뜻을 반역하고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그것을 끄집어 내어 회개하는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두올묵상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