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15 /[강론] 청포도가 익어가듯 - 류 해욱 신부님

2007. 7. 18. 오전 7:46:51

글자
 청포도가 익어가듯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7월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몇 년 전 대구의 어느 고등학생이 썼던 짧은 글을 나눕니다.


  오늘은 한 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용돈 받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더욱 더 기다려진 까닭은 수학여행 준비로 용돈을 좀더 넉넉히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고 하듯 내 손에 쥐어진 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이었다. 참고서 사랴, 학용품 사랴, 정말 3만원 가지고 무얼 하라는 건지 그리고 또 모레가 수학여행인데..... 나는 용돈을 적게 주는 엄마에게 있는 대로 화풀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인데..... 평소에 쓰던 가방 가져가기도 민망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교실에 도착했다.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내 짝꿍이 용돈 넉넉히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수학여행 때 가져 갈 거 사러 가는데 같이 안 갈래?”

 

  한창 신나게 윈도우 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30분 후 다시 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밧데리까지 빼버렸다. 그리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괜히 화를 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신발도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었고 가방은 옆집 언니에게서 빌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오늘 엄마가 일 나가는 날이었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가 나와야 할 시간에 뉴스가 나왔다. 뉴스 속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자주 타는 지하철에 불이 난 것이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냈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만 이어지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걸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리고 꺼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문자 다섯 통이 와 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도 두통이나 있었다. 엄마가 보낸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 주려고 했는데... 미안하다... 내 딸아 ... 정말 사랑한다.”

 

  너무나 안타까워 읽으면서 그냥 눈물이 흐르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마음으로부터 기도하게 됩니다.


  사랑이신 주님,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어느 시인이 읊었던 7월을 보내며 기도합니다. 저희들 마음 안에 마치 청포도가 익어가듯 사랑이 익어가고 성숙해지도록 넓은 마음을 주십시오.

 

  저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늦게 하지 않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저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깝게는 가족, 이웃,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바로 저희가 사랑을 나누고, 또한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장마철이면서 동시에 폭염이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한 이 7월, 저희 모두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저희 한 사람 한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시오.

 

  또한 사랑의 계절이기도 이 달은  저희 모두가 더욱 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저희들 가슴 위에도 당신의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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