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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無所有)하고 무인연(無因緣)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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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사람을 구분하면 학생과 제자가 있습니다. 학생은 선생의 지식과 기능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의 지식과 기능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과 제자는 구분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예수 학생은 많은데 예수 제자는 더물다’고 누군가가 한탄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복음전파를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참 제자의 정신과 몸가짐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첫째로 ‘무소유(無所有)하라’고 했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한 마디로 무소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지닌다는 것은 번뇌의 시작입니다. 무소유-그것은 곧 자유입니다. 무소유-그것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늘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아무 것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모든 것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해 철저히 모든 것을 버린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감싸고 소유한 진정한 하늘이십니다. 둘째로 ‘무인연(無因緣)하라’ 했습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한마디로 무인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인연 역시 번뇌의 시작이 됩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옳지 못한 일인 줄을 알면서도 혈연과 학연과 지연에 묶여서 편을 들 때가 있습니다. 동업자는 동업자끼리, 동창은 동창끼리, 종씨는 종씨끼리 모여서 서로 족쇄를 채웁니다. 그래서 이 인연이 번뇌의 싹이 되는 것입니다. 고향도 부모 친척도 버리고 출가하신 예수님은 그 어떤 인연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인이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물질의 소유도 이웃과의 인사도 거절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비인간적인 요구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은 인연을 끊음으로 외톨박이가 되라는 말도 아니고, 세상 것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무능한 이상론자가 되라는 말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참 제자의 길은 소유와 인연으로부터의 자유와 아낌없는 헌신의 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유를 포기 못해서, 인연을 끊지 못해서 고뇌하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럽습니다. 주님 그렇더라도 사랑해 주시고 받아주소서. 아멘. |
[강론] [부산교구]무소유(無所有)하고 무인연(無因緣)하라 - 김창대 엠마누엘 신부님 2007.07.15
2007. 7. 18. 오전 7: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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