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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 나라는 이미, 여기에
제 1독서 : 필레 1,7-20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주십시오.)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우주 시대를 열기 위해 세계 열강들이 많은 경쟁과 자본들을 투입합니다. 특히 우주 탐사 시대를 처음 열었던 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은 경쟁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그 당시 먼저 우주를 탐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의 냉전 체제 하에 있는 두 강대국의 우열의 문제이자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한 소련 우주 비행사가 달나라를 다녀와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디에 있다는 말씀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는 먼 하늘 위나 혹은 죽은 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마귀들이 쫓겨나고 수십 년 동안 절망과 자기 인생을 비관했던 사람이 한 순간 희망과 감사를 올리는 그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곳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배고파 떠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보람을 느끼는 곳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노인들을 위하여 쌀을 나누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면서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는 그 곳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지요. 나에게 큰 피해를 준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쳐다보고 싶지도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체를 모시며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같은 신자이면서도 누구에 대한 미움과 보복으로 가슴이 응어리져 있다면 그 곳에는 하느님 나라가 아닌 지옥이 들어섭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지옥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느냐, 나의 욕망을 따르느냐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복음을 실천하는 곳 어디에나 하느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내는 가정 안에서, 이웃 안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복음을 실천하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
하느님 나라는 이미, 여기에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1. 오후 8: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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