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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부활 25주간 화 요한 3,1-8- 요술쟁이와 생쥐
이솝 우화 중에 요술쟁이와 생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의 집에 살았는데 고양이를 늘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래서 요술쟁이는 생쥐가 불쌍하여 고양이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개를 무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술쟁이는 생쥐를 다시 개로 변화시켜 주었는데 이번에는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술쟁이는 다시 호랑이로 변화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호랑이가 된 생쥐가 고양이를 만나자 오줌을 싸면서 숨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요술쟁이는 ‘네가 모양(껍데기)만 바뀌었지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구나. 다시 생쥐로 돌아가려무나.’하면서 생쥐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영진, ‘세수는 매일 하십니까?’에서 발췌) 그렇습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껍데기의 변화가 아니라 속마음의 변화입니다. 창녀 막달레나가 성녀가 되고, 탕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인이 되듯 마음의 변화가 곧 부활입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교만이 겸손으로, 무례함이 감사로,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는 변화입니다.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삶,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정말 물과 영으로 새로 태어난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새로 났는지 말입니다. 다른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면 이번 부활은 결코 의미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왜, 애착이 일어납니까? 왜, 불쑥 불쑥 주체할 수 없는 혈기가 일어납니까? 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일어납니까? 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감으로 우울해 지는 겁니까?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덜 변화되어 자신의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어떤 애착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의 체험은 쓰시기 위함이며, 고통 속에서 흐느끼게 하심은 성숙하게 함이며, 자유를 달라 하심은 참되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며,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그만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보다 “순종”을 더 좋아한다는 시가 있듯이, 우리가 지닌 자유를 하느님께 내어 드립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사욕이나, 애착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아무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 변화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해가되거나, 죄가 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변화된 삶의 결과가 주는 감동과 기쁨은 두 배가 될 것입니다. 아멘. 내일부터 보름 정도 해외 성지 순례 갑니다. 처음 나가보는 외국이라...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됩니다. 좋은 경험,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매 성지에서... 그리고 미사중에... 우리 싸랑하는 가톨릭 교리반 식구들을 위해 기도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럼,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부럽죠.ㅋㅋㅋ 아는 영어는... '하우머치뿐'인데... 어쩌죠?ㅠㅠ |
다해 부활 25주간 화 요한 3,1-8- 요술쟁이와 생쥐 - 이찬홍 신부님
2007. 4. 18. 오전 7: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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