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황순찬(송파정신보건센타)-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돌아보면 10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다. 전보다 미성숙함을 포장하는 기술이 진일보한 것은 있지만 근원적으로 새는 쪽박이 어디 가겠는가. 평소 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내가 실수한 부분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가 뭐라고 꼬투리를 잡으면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며 얼버무릴 때가 많다. 그런데 종종 아내가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의 핵심적인 면을 지적할 때가 있어 내심 소스라치게 놀라 허둥지둥할 때가 많다.
한 번은 저녁시간에 큰아이와 둘이서 비디오로 ‘스타워스’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둘째는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큰아이는 이제 여덟 살이라 예전처럼 그렇게 아빠한테 올라타고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째는 아직 다섯 살이라 나만 보면 올라타고 짓이겨서 함께 있으면 살갗이 아프다. 같이 장난감놀이를 해도 계속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다가 악을 쓰고 울면서 발길질을 해대는 통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어디 갈 때도 절대로 걸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나한테 매달려서 어떻게 해서든지 안긴 채 다닌다. 그래서 가급적 둘째와는 붙어서 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아내가 둘째를 소외시키는 것 같다고 핀잔을 준다.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면서도 오히려 열을 내어 “어떻게 아빠가 두 아이를 똑같이 사랑하지, 누군 좋아하고 누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어? 애들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아내 역시 “아니면 말지, 왜 큰소리야!”라고 빽 소리를 지른다. 나는 아무래도 뒤가 켕겨 주섬주섬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한편으로는 화가 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그걸 아내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집에 다시 들어가서도 나는 그런 적 없노라고 끝까지 우겼다. 마음이 편치 않지만, 내가 옹졸하다는 것을 알지만 내 알량한 자존심은 마지노선을 허물지 말라고 종용한다. 결국 나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나를 합리화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한다. 산성화된 체질을 알카리성으로 바꾸는 것도 내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 한다고 한다. 지금 같아서는 물과 성령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뭐가 바뀔 것 같지가 않다. 성경을 대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뻔뻔스럽게 중얼거린다.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사람도 생긴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