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겹씨
여주라는 이름의 시각장애인 아이와 다른 두 분과 함께
남양 성모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순례를 왔다기보다는 소풍을 온 사람들이 발에 치일 지경으로 많았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 좋았는데
그 꽃을 시각장애인 여주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여주는 돌로 된 묵주 알을 만져 보기도 하고
큰 성모님 옆에 있는 아기 예수님 상에 올라가서 눈, 코, 얼굴을 만지며 좋아했습니다.
호시절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제는 꽃들에게도 어린이들에게도 정말 호시절이었습니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민들레 홀씨도 있네.” 라고 하여 제가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말 때문에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민들레는 겹씨’라고
아는 척을 했지요.
홀씨면 어떻고 겹씨면 어떻습니까?
그게 대수는 아니지요.
민들레를 보고 느낌을 느낄 수 있다면,
나아가서 시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한 것이겠지요.
집에 돌아와서 민들레에 대한 단상을 적은 글을 떠올리고
그 책을 찾아냈습니다.
호시노 토미히로라는 일본 화가가 쓴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라는 책입니다.
처음 그 책을 만났을 때, 놀라웠지요.
호시노라는 사람은 소위 구족 화가이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선생님이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방과 후
체육 동아리를 지도하다가 경추손상을 입어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러나 장애의 몸으로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수많은 저서를 펴내고 있는 놀라운 사람이지요.
한국에도 너무나 비슷한 처지와 경력을 지니고 있는
또 한 사람의 구족화가이자 시인이며 작자인 이상열이라는 분을 잘 알고 있지요.
두 사람이 나이도 같고 전직이 선생님이었다는 것도 같고
장애를 딛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고 시를 쓰고 책을 펴내는 것도 같지요.
당장 이상열씨에게 그 책을 보내고
저는 다시 사서 몇 번을 읽었었지요.
그제 저녁 그 책에서 ‘민들레’ 그림을 그리고 단상으로 쓴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언제였던가
너희가 하늘을 나는 걸 봤단다.
바람에 실려
소중한 것 하나만 몸에 지니고
훨훨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였단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잘것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면 나도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달리 말하면, ‘사랑의 이름으로’가 되겠지요.
‘사랑의 이름으로’ 구할 것이 무엇인가?
호시노 토미히로씨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라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바로 그것을 구해야 하겠지요.
그가 말합니다.
“9년 동안의 병원 생활을 돌아보면, 괴로웠던 기억보다는
친구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건네준 격려의 말이,
외로웠던 기억보다는 제자들이 보내온 밝은 편지가,
밋밋한 병실 천장보다는 창가에 활짝 피어 있던 꽃송이가 떠오릅니다.
죽고 싶었던 기억보다는 ‘살아야 해!’ 라고 깨우쳐 주신 어머니와
성경 말씀이 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밤이 있기에 아침이 눈부시듯,
무언가를 잃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일이 있지요.
별 생각 없이 움직이던 손가락, 당연한 듯이 걸어 다니던 다리...,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욱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소년 시절 내가 꿈꾸던 ‘언젠가....’는 출세나 높은 지위와의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제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던 작은 나와 크나큰 사랑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만남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호시노처럼 ‘큰 사랑과의 만남’이어야 함을
저도 깨달을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 류해욱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