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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화요일 - 이성주 신부-
오늘도 우리는 어제 복음에 이어 니코데모와 예수님과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제는 아니었지만 율법을 공부하는 열심한 바리사이였던 니코데모도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기는 어려운가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율법과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니코데모는 자기의 생각이 맞다고 무조건 우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틀리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는데, 니코데모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도 아직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름이 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만큼 많이 공부해야 되고, 지켜야할 율법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외우고, 또 실천까지 해야 되기에..... 그렇게 이름이 난 니코데모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미처 몰랐던 것이고 그냥 외울 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니코데모를 통해서 우리는 신앙은 외워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새로 나야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교시절 시험공부를 하다보면 이해하기 보다는 무조건 외우려고만 했습니다. 아니 기도문도 외우려고만 했습니다. 이해하지는 않고, 남들보다 못하다는 말은 듣기 싫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성령의 힘으로 부활신앙이 삶의 중심에 자리 잡아지고, 예수님에 대한 기도문이 마음으로 와 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름난 스승 니코데모가 율법을 외우지 못해서 예수님을 찾아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이 손수 인간이 되신 그 사랑을 알고 싶고, 받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 밤에 찾아갔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새로 나야 되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니코데모는 요한복음7장에서, 예수님을 끌고 오지 않은 성전경비병들에게 질책하는 수석 사제들과 다른 바리사이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요?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7,51-52).”라고 핀잔을 주는 예수님의 반대세력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십자가 위에 들어 올려지고, 돌아가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두려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오늘 사도행전4장이 전하는 독서의 말씀이 이를 잘 알려줍니다. 초대교회 신자 공동체는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면 어떻게 되지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꺼이 자기 것을 내어 놓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나누는 것은 율법 속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신, 살아계신 하느님을 보여주는 사랑표현입니다. 부활신앙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고, 내가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하는 우리 자신을 죽이고, 하느님의 힘을 받아드리는 용기입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성령을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령이 주는 믿음의 은사를 통해서 우리는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니코데모처럼 예수님을 찾아가야 되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귀를 활짝 열고서 들어야 되고, 또한 주님을 우리 집에 머물도록 청해야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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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화요일 /[강론] 부활 2주간 화요인[이성주신부님]
2007. 4. 18. 오전 7: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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