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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주간 금 요한 18, 1-19, 42- 예수님께서 내쉬시는 한숨 속에...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고개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우리 주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온 가족과 친지, 형제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편안하게 숨을 거두신 것이 아니라, 바로, 멸시와 수모, 조롱과 비웃음, 고난과 아픔 속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주님께서 이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독서의 고난받는 야훼의 종 넷째노래에서 알려주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분이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분이 징벌을 받았고, 그분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하느님께서 주님을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라는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들처럼... 벗을 대신하여 매를 맞고, 벌을 받는 참된 친구의 모습처럼... 남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참된 사랑과 스승의 모습처럼... 그렇게 우리의 부모님이요, 친구요,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우리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죽음 앞에서... 십자가가의 길을 걸으시며 지치고 거친 숨을 내쉬신 슬픈 날에 문득, 주님께서 내쉬신 한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향한 여정 안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내뿜어 나오는 길고도 거친 한숨이 메마르고 무디어진 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헉”하고 숨을 내쉬시며 넘어지시는 그 모습 속에서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이 어떠한지 알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걸으셔야 할 길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아직 다 이루지 못하였기에... 바수어질 정도로 어금니를 질끈 물고 다시 일여서려고 거친 숨을 휘몰아치는 주님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거친 한숨을 내쉬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습니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넘어져 다시는 일어서고 싶지 않는 나약함을... 강한 절규가 담긴 한숨으로 이겨내어 인간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살과 뼈가 뚫린 채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그 고통보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으면서 내쉬어야 했던 그 한숨이...금방이라도 멈쳐 버릴 것만 같은 그 한숨을 내쉬야하는 그 순간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숨과 한숨이 교차되는 시간이 끝나고... ‘헉’ ‘헉’ 거리는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주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 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내쉬신 그 숨은 더 이상 고통의 한숨이 아닙니다. 당신의 사명이 미완성인 채 끝나버리는 것 같은 그런 통탄의 한숨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든 계획이 주님 안에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주님을 죽인 이들이 승리하고, 주님께서는 패배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인류의 원수인 악마와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를 이루시는 순간입니다. 바로,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아무런 가치가 없이 보이는 그런 주님의 죽음이..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이... 우리에 대한 바보 같기만 주님의 사랑이 바로 원수를 이기는 무기요, 단 하나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한숨을 내쉰 그 숨은 당신의 말씀과 사랑, 모든 행적들이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순간이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깊이 새겨지는 그런 순간이요, 한숨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달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주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이런 기도가 메마르고 무디어진 마음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주님, 전에는 사순시기가 참 좋았습니다. 성가가 마음에 참 많이 와 닿았고, 사순시기에 전례가 저의 마음에 큰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주님 부활을 향한 여정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사순시기가 더 이상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이번 사순절의 전례와 희생, 보속의 삶이 조금을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죄를 씻는 보속의 시간이 아니라, 그저 사제로서 해야만 하는 일로만 바라보고... 년 중 전례력 안에서 거쳐 가야 할 과정으로만 여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세 “왜 이렇게 되어 버렸나요?” 라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주님을 위한 삶보다는... 신자 분들을 위한 삶보다는... 저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수난과 죽음을 통한 영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고, 또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난과 죽음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도 저는 수난과 고통보다는 편리만을... 자신을 버리는 죽음보다는 자기애에 빠져 생활하다보니 그렇게 사순절이 아무 의미가 없는 시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모든 전례가 주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계적인 형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 어쩌면,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주님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쓰러지고 싶은 유혹을.. 넘어져 다시는 일어서고 싶지 않은 나약함을 거친 한숨으로 이겨냈듯이, 저에게도 저의 욕망과 애착,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당신께만 의미를 두고, 또 당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헉’ ‘헉’하며 내뿜는 거친 한숨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 한숨을 통해 부족하고 나약한 제가 당신의 사제로 살아갈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숨을 통해 저 역시, 저에 대해서 죽을 수 있고, 주님이신 당신께서 제 안에서 살아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다해 성주간 금 요한 18, 1-19, 42- 예수님께서 내쉬시는 한숨 속에... 이찬홍 신부
2007. 4. 7. 오후 7: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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