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회심(回心) 4 l 박정자 로사리오 수녀 2007.03.25

2007. 3. 27. 오전 8:30:08

글자

 회심(回心) 4

 

 

   내게는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내 이야기를 정성을 다해 들어 주는 아주 오래된 귀한 친구가 있다. 아마도 부모와 형제자매가 떠나고 난 후, 그 친구를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이해받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게는 아주 소중한 친구다.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건장했던 그 친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여기저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친구를 보며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쓰였다. 자주 만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아쉬움도 많았다.



   며칠 전 어렵사리 시간을 내었다. 우리는 산책을 하며 밀렸던 회포를 풀었다. 친구는 요즈음 맘이 편치 않다고 했다. 어떤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섭섭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를 알아차리고 두세 사람과 그 느낌을 나누었다고 했다. 나는 화난 것을 의식하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 잘한 일이라며 격려했다.


   나는 어떡하든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 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께 자신의 느낌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나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친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나는 돕고자 하는 내 소망에 몰두해 본심과는 다르게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못했다는 것을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친구는 그 동안 쌓인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을 풀어놓고 내게 이해받고 싶었을 텐데,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해결해 보라며 설득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얼마나 더 답답하고 속상했을까. 나는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건만, 정작 그 친구에게는 도움을 주지 못한 이런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친구와의 이 체험은 내게, 친구뿐 아니라 내 주위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들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나의 선의와는 다르게 내 생각과 내 방식대로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토록 부족한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과 이런 나를 참아 주고받아 주는 그 친구와 다른 많은 이웃들이 있음에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체험은 부족한 나의 진실을 만남으로써 다시 그분께로 돌아서게 된 또 다른 회심의 체험으로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 박정자 로사리오 수녀·성심 수녀회, 한국에니어그램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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