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ㅣ 유영봉 신부 /2007.03.25

2007. 3. 27. 오전 8:28:01

글자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묵상길잡이 : 올가미를 슬기롭게 빠져나가시는 예수님의 지혜가 돋보인다. '단죄하러 오시지 않고 구원하러 오신 주님'이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형제들을 단죄하고 벌(罰)하려 했던가? 우리도 죄를 뉘우치며 주님 앞에 꿇어 용서를 청하자.

1. 돌에 맞아 죽을 죄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살인과 배교(背敎)와 우상숭배와 간음을 큰 죄로 간주하였고, 이에 대해서는 공적인 보속을 명하였다. 시대에 따라 법 감정이 변하듯이, 요즘은 일반인의 생각도 많이 바뀐 듯 하다. 어떤 40대 주부가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영세를 하기 위해 본당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 신부님도 얼마 전에 방영된 '애인'이라는 연속극 보셨지요. 신부님 제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주부로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다하면서, 직장이나 모임을 통해 알게된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죄가 됩니까? 정말 무슨 말을 듣고싶은 것인가 싶으면서도, 질문을 하는 상대방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기 때문에, 말 해 줄 것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서 차 한잔 정도 마시는 것이 큰 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남편 아닌 남자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다 보면 인간관계의 정(情)이란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대로 조절되는 것도 아닌데, 찻집에서 만나는 것으로 끝난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주어진 자신의 임무를 다 한다고 하지만, 부부관계란 항상 배타적인 사랑의 관계이기에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부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가에 자주가면 아무리 조심해도 물에 옷이 젖게 마련이듯이 그것은 위험한 모험입니다. "세상 흐름이 그러니까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지요. 그 예비신자는 "잘 알겠습니다." 하였지만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2 예수님께 놓아진 올가미

오늘 복음의 상황은 겉으로는 단순히 죄녀 하나를 불러 예수님의 고견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다면 그 당시 모세 법으로는 돌로 쳐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역설해 오신 터였다. 평소의 주장대로 "죄녀(罪女)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하면 예수님은 모세 법을 어긴 죄인으로 고발될 것이고(이것이 그들이 노리는 것이다), 법대로 돌로 쳐죽이도록 묵인하면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주장을 번복해야 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 대한 재판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모두들 끌려온 여자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며, 돌을 불끈 쥔 손에는 살기(殺氣)가 돈다. 사태는 험악하고 심각하다.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 답을 재촉하지만, 예수님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신다. 그러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하셨다. 사람들은 한 대 맞은 표정들이다. 예수님은 끌려온 죄녀를 향해 쏟아지던 단죄와 저주의 눈길을 각자를 향해 돌려보도록 하신 것이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그냥 둔 채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문제삼는 태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대신학교 다닐 때 '3선 개헌'을 반대하여 삭발 데모를 한 경험이 있다. 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별 느낌이 없었는데, 삭발한 동료의 모습을 보거나, 복도를 지나가다 큰 거울에 비친 나의 낯선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옷매무새와 말씨와 행동거지를 하나 하나 뜯어보면서 너무나 쉽게 판단을 한다. 그러나 남들의 눈에, 아니 하느님 앞에 비친 나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자주 반성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이다.

3. 다시는 죄짓지 말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던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간음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는 뜻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소위 문민정부가 끝나기 며칠 전에, 23명의 사형수를 처형한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중에는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죽으면서 장기(臟器)를 기증한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잘 안다. 그러나 시기와 증오와 복수심에 눈이 멀다 보면, 그런 것은 사치스런 말장난 라고 여겨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가차없이 단죄하고 매장시키며 그들을 밟고 올라서기도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돌을 던질 자격으로 본다면 예수님보다 더 당당한 자가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를 향해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죄대로 우리를 갚으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다시 한번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자.

고해소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맹세하노니, 죄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노라."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
[묵상] 회심(回心) 4 l 박정자 로사리오 수녀 2007.03.2507.03.27조회 312007.03.25 /죄! 복된 것이 되기 위하여... 이찬홍 신부님07.03.27조회 31[묵상] 죄를 묻지 않으시는 하느님 ㅣ 유영봉 신부 /2007.03.2507.03.27조회 322007.03.25 /[강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l 서공석 신부님07.03.27조회 31상상(력)(Imagination) - 허윤석 신부님 /2007.03.2507.03.27조회 31사순 제5주일/신부는 죄인에게 강복하소서 - 하성호 신부님07.03.27조회 30[묵상] 교황님의 ‘보디가드‘ ㅣ 이호자 마지아 수녀님 /2007.03.2507.03.27조회 31다해 사순 제 5 주일/가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 조성호 신부님07.03.27조회 30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용서 - 우종선 신부님07.03.25조회 31용서받은 자녀답게 살자 - 배광하 신부님07.03.25조회 312007.03.25 /새로운 탈출 - 백성환 신부님07.03.25조회 31상처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2007.03.2507.03.25조회 31공간을 넘어서 생활하여진 시간으로서의 용서와 화해-이진수 신부님07.03.25조회 31사순 제5주일 2007.3.25.살리는 심판자 - 허찬란 신부님07.03.25조회 31사순 제5주일 / 죄 없는 자 - 김현조 신부님07.03.25조회 31사순 제5주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 정 세라피아 수녀님07.03.25조회 312007.03.24 /[강론] 사순 5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07.03.25조회 31